有脚陽春-나의 사랑

어떤 연애

nongbu84 2009. 6. 30. 15:39

어떤 연애-촛불 집회에 참여하며  

인사동 거리에서 싸리 꽃처럼 화사한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저녁 무렵 어슴프레한 어둠이 스멀스멀 내렸습니다. 바람은 내 얼굴에 붉은 뺨을 비벼댔습니다. 인사동 어귀의 공연 무대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였습니다. ‘노숙의 세월’은 소주잔을 기울였고, ‘기다리는 약속’은 서성대며 둘레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외국인 악사는 사연을 담은 선율을 울렸습니다. 바이올린의 연주에 맞추어 간판의 형광불빛이 하나둘씩 울긋불긋 피어났습니다. 빨갛게 익은 능금 같은 전등 몇 개도 가게 문 앞에 걸렸습니다. 


청보리 향기가 나던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인사동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많은 추억을 이고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내 가슴은 둥둥 북소리가 울렸습니다. 분수처럼 솟아올랐으며, 쿵쾅쿵쾅 자맥질을 쳐댔습니다. 그들 모두가 내가 기다리는 사람으로 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추억 모두가 내 추억이었다가 아니었습니다. 가게 문에 걸린 붓과 한지가 내게 곡절로 다가왔다가 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인사동 골목의 풍경을 이루는 사람들도 나였다가 아니었습니다. 노숙생활로 ‘때 절은 옷을 입은 중년사내’가 나였으며, 옛 추억을 더듬으며 서성거리는 ‘능숙한 기다림’이 나였습니다. 길바닥 바람에 날리는 ‘광고지를 줍는 사내’가 나였습니다. 곱게 수놓은 한지를 펼치는 가게주인과 2층 창가에서 술 마시며 거리를 구경하는 손님 또한 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였다가 다시 풍경으로 사라졌습니다.


전통찻집의 건물그림자가 가슴까지 차오르고 내 얼굴은 넘어가는 햇살로 따가웠습니다. 나는 이마 주름에 세월을 담고 있는 노인의 옆에 앉았습니다. 오늘도 꼭 그 자리에서 그 만큼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가슴 한 가운데로 노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가슴 애린 그리움 때문에 저녁노을은 가슴 속에서 붉게 붉게 짓물렀습니다. 봄가을이 몇 번 찾아오고 여름 겨울이 몇 번 바뀌었습니다. 그럴수록 노을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나도 이미 인사동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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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떠났습니다. 사.뭇.사.뭇 떠나갔습니다. 마.침.내 떠났습니다. 안녕!!!


헤어진 이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헤어짐은 눈물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가 풍문처럼 사라지는 등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 위로 눈물 번진 편지 한 통을 빨간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눈물 번진 편지를 보낸 것은 헤어짐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다.시 만났습니다. 우.연.하.게 만났습니다. 오.랜. 세. 월. 기다려 만났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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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봄 날 땅거미 내리는 저녁 무렵, 역사의 뒤안길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쇠고기 협상 무효를 외치고, 미친 교육을 반대하며 정권퇴진을 외치는 광화문 광장, 그 역사의 현장 옆 기다림의 공간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인사동 골목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골목이 없었다면 눈길 줄 곳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람은 정처 없이 떠돌았을 것입니다. 골목이 없었다면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의 그리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골목이 없었다면 가로등 불빛아래의 전율이 흐르는 연애도 없었을 것입니다. 골목의 ‘옛 이야기’에서 차를 마시며 옛 추억을 슬프지 않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곳에서 커가는 아이들의 교육비며, 전세 값 이야기며, 살아 온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이야기했습니다. 밤 새워 토론했던 열기가 생활의 걱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은 늦게 알려주는 것이 많습니다. 시간이 늦게 알려주는 이유는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흐를 즈음 남산으로 걸었습니다. 걷다 지쳐 ‘잊지 못할 명동의 추억’이 담긴 ‘무아(無我)’라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슴 속에 묻고 있었던 김남주 선생님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광무 망월동에 누워계시지만 나와 그 사람의 마음에는 살아계셨습니다.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이야기했습니다. <사과하나 둘로 쪼개 나눠 먹는 사랑>과 <천년을 두고 찾아오는 봄>을 이야기했습니다. 김남주 선생님께 고백했던 사랑의 맹서도 찾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가 남은 조약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한테서 사막을 걷는 낙타의 외로운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정 무렵 기차를 탔습니다. 광주 망월동을 향해 함께 떠났습니다. 헤어진 시간 동안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함께 와야 할 곳이었습니다. 아파하고 먹고 사느라 김남주 선생님이 알려준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먹는 사랑>과 <천년을 두고 오는 봄>의 의미를 잊고 살았습니다. 동틀 무렵 ‘깃발 들고 일어나 이제는 깃발 덮고 누운’ 김남주 선생님의 묘에 도착하였습니다. 김남주 선생님은 묘역의 한 곁에서 누워계셨습니다. 강경대 열사의 묘가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자네들 왔는가?” 투박한 목소리의 사투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뭔 시다냐!! 농사짓는 내 어머니가 알아듣지 못하는 시가 뭔 시다냐!!” 삶이 담기지 않은 시를 타박하는 말씀도 들렸습니다. “이 가을에 나는” 이란 시를 낭송하는 시가 들렸습니다. 온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인사드리자 하늘 가득 펄럭이는 깃발 하나 전해주었습니다. 그 깃발을 손에 움켜쥐었을 때 내 가슴에서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그 깃발에는 “사랑 그리고 평화”란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운 시대의 깃발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내 가슴에 담은 깃발이 그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오랜 세월 기다린 것은 ‘그 사람을 닮은 깃발, 깃발을 닮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기다린 것은 ‘그 사람을 닮은 깃발을 가슴에 담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서서 기다린 것은 ‘그 깃발을 손에 잡고 걸어가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내가 그 사람에게 가고 있는 동안, 그 사람도 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려 아주 먼 곳에서 아주 천천히 오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가고 있는 동안 그 사람도 아주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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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 도착하여 광화문 광장으로 갔습니다. 가슴 속에서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거대한 물결이 일었습니다. 굽이치며 휘몰아치며 몸을 뒤틀며 큰 파도가 일었습니다. 나는 한 걸음  내딛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가슴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가슴에서 파도가 일었습니다. 가슴에 항상 찾아오는 봄, 사랑하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시위대에 합류하였습니다. 가슴 속에 촛불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촛불을 두 손으로 모아들고 수많은 촛불과 함께 행진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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