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소래포구

nongbu84 2010. 1. 26. 00:44

소래포구

 

 

떠남보다 기다림이 앞서는 소래포구의 새벽,

아버지가 연두색 장화를 신으면

배의 불빛은 시장 길목의 노란 대문 집 여자처럼

밀물이 들어오는 때를 맞추어 신음소리를 냈다.

 

배가 떠나면

눈이 살얼음으로 자박자박 박히고

기러기 떼는 시장 문턱 술집 지붕에서

날개에 품었던 고개를 쳐든다.

사람들은 뻘 밭에 박힌 목선처럼

뼈가 드러난 생애를 찬바람으로 덮으며

화톳불을 피운다.

낙지처럼 감겨 붙는 전라도 아주머니와

농어처럼 토실한 충청도 아주머니와

채소처럼 상큼한 강원도 처녀와

돌담처럼 경계하는 제주도 홀아비와

새우처럼 등 굽은 경상도 홀어미가 모여,

소금처럼 굵은 눈을 맞으며

꽃게처럼 화려한 지폐를 건네며,

쫄깃하게 감기는 꼬막의 사투리로

억센 억양의 바람소리로

홍어처럼 쏘아대는 욕으로

바람이 빈 소주병에 집을 만든 사연과

비린 냄새나는 소문을 이야기한다.

다만 천막 속에서 죽은 천희 아버지와

절름발이가 된 목재소 주인과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연은

침묵한다.

 

기다림보다 그리움이 깊어진 소래포구의 새벽,

화톳불에 상자조각을 던져 넣으면

포구에서 썰물 때를 맞추어 바다로 나가

그물을 풀고 걷어 올렸던

눈썹 짙은 사내가 그립다.

뻘에 박힌 목선 한 척과

뼈만 남은 초상화를 방에 걸어둔 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그립다.

나는 화톳불에 등 돌리며

소래포구처럼 뒷짐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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