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는 친구들에게
2009년 3학년 11반 담임 박 승균
1.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드리는 선물
(1) 김진경의 <낙타>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곁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2) 최두석의 <거북이>
갯바위 위에 웅크린
거북이 한 마리
부서지는 파도 맞으며
뒤설레는 밤 바다 응시하고 있다
운명의 행로처럼
등 껍데기에 펼쳐진
세상의 세월의 지도 위로
별빛이 빛난다
애초부터 잔재주의
토끼와 경주할 생각은 없었다
묵묵히 생애를 걸고
제 길을 갈 뿐인 것이다
2.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잘 가거라. 저물 무렵 지는 해를 바라보며 너희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3년 내내 이곳 우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의 무거운 가방을 쳐다보며 걷던 길, 그 길을 이제는 세상을 향해 너희들이 걸어 나갈 시간이 되었구나. 이곳은 먼 훗날 너희들의 가슴한켠에 추억으로 남을 것이란다. 세상을 향해 첫발을 옮기는 너희들의 눈앞에 <세상>이란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구나. <세상이란 모래벌판>에 오아시스가 숨어있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저 세상이 <오아시스를 가슴에 담은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려주고 싶단다. 또한 모래벌판 너머의 무지개 숲속을 한 걸음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단정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저 너희들 앞에 펼쳐진 <모래벌판 같은 세상>은 무척 목말라하고 있으며, 그 <모래벌판을 걸어가며 풀 한포기 심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려주고 싶단다.
모래벌판을 걷는 일은 누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너희들 자신부터 목마르고 넘어지는 길이란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낙타가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자신의 영양분을 저장하고 사막으로 향하듯, 너희들의 목마름을 스스로 해결할 희망의 물통 하나쯤은 너희들의 가슴과 허리에 차고 길을 가야 한단다. 그러면서 세상이란 모래벌판을 걸어가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마름도 느껴야 한단다. 너희들 각자는 그 누군가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네 자신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너희들 스스로가 그 길을 걸으면서 풀을 심어 물길을 끌어오는 방법뿐이란다. 그러면 훗날 너희들의 뒤를 따라 모래벌판을 걸어갈 또 다른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단다. 너희들 스스로 모래벌판을 풀이 자라는 초원으로 바꾸기 위해 "씨앗을 심는 일이 세상을 사는 방법이란다. 너희들이 뿌린 씨앗이 자라 풀이 되고, 그 풀들이 물길을 끌어올 것이며 물길이 트이면 그 길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란다. 너희들이 걸어가면서 뿌린 씨앗 하나만 싹이 자라더라도 모래벌판은 걸어갈 만한 추억의 길이 될 것이란다. 이미 너희들은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목마름을 채울 물 한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단다. 또한 그 누군가의 목마름을 채워야 삶이 행복함을 배웠단다.
3. 고욤나무를 잘라낸 곳에서 감나무가 나온단다.
졸업하는 친구들아!
내 어린 시절 산비탈 밀밭을 내려오면 조그만 도랑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 고욤나무 한 그루 서있었단다. 새벽 서리 찬 기운에 계집애의 젖꼭지를 닮은 고욤들이 소낙비처럼 쏟아 내렸단다. 고욤을 종그락에 주워 담고 그래도 남으면 앞자락 말아 올려 주워 담았단다.해 저물 무렵 집에 가져오면 고욤들은 엉겨 붙은 팥죽처럼 뭉개졌단다. 몇 달 동안 그 고욤을 무처럼 길쭉한 항아리에 재우면 고욤은 떫은맛을 떨치고 맛있게 익었단다.
그런데 고욤은 씨앗을 골라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단다. 입 안 가득 고욤을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씨앗을 골라내기 바쁘게, 또 한 입 가득 고욤을 털어 넣으면서 먹었단다. 그 씨앗을 발라내는 재미는 외할머니 담뱃재가 묻은 왕사탕을 먹는 것처럼 기뻤단다. 씨앗을 골라낸 뒤끝의 텁텁하면서도 단 맛! 알밤의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과는 달리 오랜 여운이 남는 맛이었단다.
그런데 그 고욤나무는 감나무로 변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단다. 그 고욤나무를 잘라내어 여린 감나무줄기와 영양통로를 맞추어 접을 붙인단다. 이것을 접목이라 한단다. 고욤나무를 잘라 감나무를 접목하면 커다란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감나무로 변한단다. 고욤나무를 잘라내어 감나무의 여린 가지를 접목하여 감나무를 만들어내듯, 삶은 잘라내고 새로운 접목을 늘 시도하는 일이란다. 영광의 뒤안길에는 잘라낸 아픔이 있고, 고운 무늬의 뒷면에는 이처럼 달라붙은 바늘땀이 있듯, 삶은 그 뒤 곁에 늘 꼼꼼하게 기운 추억의 바느질을 숨겨놓으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란다.
4. 우리는 그냥 겨울이 아니라 <그해 겨울>을 산단다.
(1)그 해 겨울
참 희한하구나. 땅이 얼고, 흙이 옹기종기 엉겨 붙어 서로의 체온을 끌어 안고 있단다. 언 땅에 뿌리박은 질경이는 더욱 깊이 손가락 모양의 뿌리를 질러 넣는단다. 나뭇가지는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헐벗었고, 플라타너스 나무껍질은 알록달록한 야전잠바차림으로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단다. 야전잠바의 군청색으로 감싼 나이테는 진한 테를 둥글게 만들어 가고 있단다. 나무는 언 몸속에서 단단하게 나이테를 만들고 있단다. 여름에 자란 나이테보다 겨울에 자란 나이테가 더 단단하단다. 겨울에도 나무는 성장한단다.
눈이 펑펑 쏟아져 땅위를 모두 덮었단다. 뽑아 모아둔 고추대공 몇 가지만이 고개를 뾰족 내밀며 햇빛을 찾고 있단다. 눈 속을 파헤쳐보면 그 하얀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에 땅위의 온갖 둔덕과 죽음과 넘어짐을 감추고 있단다. 사람살이라는게 그 고운 맵시와는 달리 온갖 자잘한 아픔과 슬픔을 안고 넘어지며 살아가는 일이란다. 사람은 그냥 겨울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해 겨울>을 사는 존재란다. 사람은 관념으로 살아가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개인들과 관계를 맺고, 구체적인 말과 행동으로 살아간단다. 사람은 겨울의 낭만적인 흰 눈을 배경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질퍽한 눈 녹은 땅을 걸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란다. 사람은 아름다운 장면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안은 가슴으로 살아간단다.
사람은 자연의 아들이란다. 나뭇잎의 엽록소가 햇빛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어 줄기를 타고 오르는 물과 공기로부터 영양분을 만드는 공장을 가동한단다. 사람도 햇살 한 줌과 공기 한 모금과 빗방울 한 방울로부터 사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받는단다. 사람은 자연의 아들이란다. 겨울철의 뿌리가 더욱 땅속으로 질러 넣는 힘을 가지듯, 사람은 혹한의 고통 속에서 더욱 크는 법이란다. 몇 십 년을 자라 몇 미리씩 둘레를 늘리듯 사람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조금씩 커야 하는 자연의 아들일 뿐이란다.
(2) 그해 겨우살이
하루살이의 일생은 하루라고 생각하기 쉽단다. 그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은 일몰과 함께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까지라고 생각하기 쉽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하루살이는 십년 가까운 삶의 시간을 지니고 있단다. 하루 동안의 날개 짓을 위해 하루살이는 알에서 애벌레로, 성충으로, 나방으로, 그리하여 하루살이로 나는 시간을 지니는 것이란다.
삶의 시간은 그 전체의 과정이고 그 전체의 흐름 속에 있단다. 바다가 골짜기 물줄기에서 시작하여 이루어지는 이치와 같단다. 가는 물줄기가 흘러흘러 거대한 바다를 만드는 것이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사람도 순간순간을 살아가며, 순간순간을 모아 삶의 역사를 이루어간단다. 이미 내 앞선 사람들의 삶이 있고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허락되었고 내 이후의 삶이 찾아올 것이란다. 삶에는 세상에서 눈예 띄는 시간보다 그 저 묵묵히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단다. 사람은 구체적인 사건과 일을 겪는 사람의 아들이란다. 사람은 바로 지금 이곳의 삶인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그때 그 순간 거기에서 살았던 역사 속에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단다. 사람은 시대의 아들이자 사회의 아들이란다. 그 시대와 그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살아가는 일이란다.
(3) 숨어있는 삶의 뒷모습
인간의 삶은 아귀다툼과 이익쟁탈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적이란다.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란다. 윤리도덕은 그 정글법칙을 이해하는 참고서일 뿐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세상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다. 인간의 역사를 떠나 인간의 사회를 떠난 삶을 추구할 수 없단다. 이미 자연의 만물들은 매년 뜨거운 더위와 추운 기운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들이란다. 자연은 결코 온실 속을 원하지 않는단다. 인간의 삶도 역사의 뜨거움과 시대의 치열함 속에서 자기의 삶을 가꾸어 가는 것이란다. 역사와 시대를 떠난 삶은 허황된 자기기만일 뿐이란다. 오히려 날선 역사의 추위와 등 시린 사회의 배고픔 속에서 딛고 일어서며 인간의 삶을 가꾸어가는 것이란다. 자연은 고통을 딛고 일어선단다. 상처가 나면 옹이를 만들어 자기를 단단하게 하고 가지가 부러지면 또 다른 가지를 뻗어 한켜 한켜의 옭아맴으로 줄기를 붙들어 열매를 맺는단다. 사람도 어려움과 불편함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는 것이란다.
5. 얘들아! 안녕!
너희들에게 찬란의 장밋빛 인생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너희들에게 빛바랜 회색빛 삶을 이야기 하지도 않겠다. 다만 너희들에게 "지금 바로 여기에서 살고 있는 너희들 각자"가 바로 삶의 주인이란 점만은 말하고 싶단다. 너희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인가 꼭 가슴에 담고 살아가거라. 너희들 각자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군가의 희망이며, 그 누군가에게 꿈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란다. 너희들 각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으며 보다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단다. 너희들 각자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하고 아름다워 질 수 있단다.
늘 가슴에 어머니의 얼굴에 담긴 너희들의 삶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반성하며 살아가거라. 어머니의 얼굴표정만큼 너희들의 삶을 비추어주는 정직한 거울은 없단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너희들의 삶의 비추어보며 살거라. 거울에는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보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리들 각자의 삶과 마음을 비추어보는 것이란다.
너희들에게는 희망의 계절이기보다는 캄캄한 거리를 헤매는 계절일 것이란다. 그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고 오직 너희들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하는 늪지와 같을 것이란다. 진흙 뻘에 발이 빠져 헤매일지라도 그 뻘에서 발을 한 발 빼어 내는 일이 삶이란다. 아름다운 옷을 뒤집어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바늘땀으로 엮어져 있는지 알 것이란다. 한 올 한 올로 엮어진 매듭이 모여 거대한 그물을 만들 수 있단다. 사람의 삶도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과 순간순간 하고 있는 일속에서 만들어진단다. 사람이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란다. 너희들에게 화창한 봄날을 이야기하는 주례사를 하고 싶지도 않단다. 너희들에게 추운 겨울을 이야기하는 현재에 대한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단다. 너희들의 삶은 너희들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일구어가야 할 곳이란다. 그 누구도 너희들의 삶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으며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방해할 수도 없단다. 오직 너희들의 꿈과 노력으로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듯 그렇게 살아가거라.
졸업하는 친구들아!
너희들이 힘들고 지친 날 책상에 엎드려 누운 날에도 너희들의 등 뒤에 아침햇살이 떠오르고 있었단다. 너희들의 가슴과 허리에 꿰어 찬 아침햇살 한 통이 없어 스스로 고민하고 아파했던 날이 어찌 하루 이틀이었을까를 늘 가슴에 담고 살거라. 다만 너희들이 그 햇살을 울컥 삼켜버려 데인 가슴을 안고 뜨거워 뜨거워 펄쩍 뛰는 사람으로 이곳을 떠나거라. 잘 가거라. 안녕!
2010. 02. 05 여름지기 박 승균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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