啐啄同時-나의 교육

교육의 발견

nongbu84 2009. 12. 30. 21:23

교육의 발견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통영 바다사람들과 밤새워 이야기했습니다. 바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들으며 나는 교육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사람들의 진면목을 만나 행복한 동행이었습니다.

 

 

1. 진흙탕을 걷는 일

 

“선생은 지 아만 잘 키우면 되는 게 아니지요. 지 아만 잘 되게 하지 말고, 다소 못나고 부족한 내 아도 잘 되게 해 주소.” 세 형제의 맏형의 말씀입니다. 교사가 자기의 아이에 대한 정성과 교육은 꾸준하게 하면서도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관심 없이 대하거나 직업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만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사는 구체적인 현실속의 구체적인 한 사람이 또 다른 한사람을 직접적으로 만나 살아갑니다. 간접적인 접속이 아니라 직접적인 접촉을 하며 눈동자를 마주하고 손의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마음을 주고받으며 생활합니다. 내 아이에 대한 이기적인 울타리를 형성하여 보호하면 경쟁에서 남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성공의 결과를 부끄러운 과정을 합리화합니다. 아이의 삶은 정직한 과정에 있지 부끄러운 결과에 있지 않습니다. 교사는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마음을 뛰어 넘어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도 하나의 삶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내 집 마당만 황금으로 깔아 논다고 해서 아이가 잘 크는 게 아니지요. 아무리 좋은 환경의 아이라도 집을 나서면 흙탕물을 걸어야 하고 진흙탕에 빠져 걸어가는 것이 현실의 삶입니다. 교사는 진흙탕을 걸을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그 힘과 의지는 내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과 부귀영화를 떠나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연대의식이 담긴 꿈을 가질 때 생깁니다.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내가 직접 당하지 않은 차별과 피해에 대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진흙탕을 걸어갈 수 있으며 자갈밭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아버지의 꿈과 한계

 

교육은 아버지 세대의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며 모색입니다. 아버지가 살지 못했던 삶의 영역을 교육을 통해 살 수 있으며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고기를 잡으며 바닷바람에 검게 탄 얼굴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아버지들은 자신의 거친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교육은 아버지의 삶의 소망이 반영된 희망이며 아버지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입니다.

 

부모는 바다위의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을린 얼굴로 가르치지만 바다가 깊을수록 옆에 솟은 산이 높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산에 대한 상상력과 꿈은 교사의 몫입니다. 부모는 바다에서 얻는 고기로 사는 방법을 보여주지만 바다에서 고기를 왜 낚아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고기를 낚는 이유는 교육의 몫입니다. 부모는 세상이 얼마나 고된 노동으로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뜨겁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지만 넓은 세상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은 교사의 몫입니다. 부모는 성실한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고 교사는 존중받으며 사는 세상의 생활을 알려줍니다. 고기 잡는 어부인 부모와 사람을 낚는 교사와 함께 아이들은 삶의 꿈을 낚는 존재입니다.

  

3. 이복형제가 형제되기

 

아이는 부모의 욕심이나 걱정으로 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인 삶의 동기를 만들며 스스로 커 가는 존재입니다. 아이의 자발적인 삶의 동기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부모의 지나친 간섬과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무관심으로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지나친 간섭과 강요는 아이를 거짓된 삶으로 이끌고 갑니다. 무관심은 아이를 방관하고 휩쓸리고 휘둘리는 삶으로 이끌고 갑니다. 아이는 부모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정성으로 성장합니다. 서로가 하나의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삶의 희망을 이끌어내고 서로의 믿음 속에서 존중과 존경의 신뢰 관계를 형성할 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이지 키운다고 키워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복 형제사이라도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자라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삶을 자꾸 가두어 혼자로 개별화 시키고 원자화 시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의 삶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확장되어 이웃이 곧 내가 되는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웃의 불행에 눈을 뜰 때 거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 대해 차마 도와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아이의 삶은 온전하게 성장합니다.

 

4. 세상을 사는 방법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어부는 고기 잡는 일을 열심히 하고 교사는 교육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교사가 인기를 얻으려 하고 돈을 벌려 한다면 교육에서 벗어난 삶을 삽니다. 사는 곳은 학교지만 마음은 다른 것에 있다면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사람과 삶의 분리만큼 거짓과 위선은 없습니다. 교사의 삶은 교실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정성껏 가르치면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두려워하며 용기를 낼 때 가능합니다.

 

5. 동행

 

동행은 구름 속에 뜬 달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깊어지는 일입니다. 다소 부족한 아이라도 달이 화살처럼 달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의 정겨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동행은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깊어지기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의 진면목을 만나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오대산 동행이 ‘익숙함의 깊어지기’였다면 통영의 동행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사람의 진면목을 만나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