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터 잡은 목공실
붉은 포목단을 머리에 인 단풍나무 한 그루와
노란 두건을 쓴 은행나무 한 그루가
위병소의 보초처럼 문 양 옆에 서서
낙엽과 바람의 방문을 맞이한다.
파란 하늘이 머문 목공실의 유리창에서
벽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넝쿨
잠시 서성거리며 울긋불긋 물들면
대추나무처럼 마른 김씨 아저씨
붉은 대추알 같은 눈으로
하루 종일
툭툭 틈새를 메우고 벌리며 탁탁
뚝뚝 거리를 잇고 떼어내며 딱딱
슥슥 면을 맞대고 어긋내며 삭삭
쓱쓱 모서리를 자르고 붙이며 싹싹
이마에 송알송알 수수알이 열리고
까맣게 죽은 손톱 위 하얀 반달이 뜬다.
소처럼 누워있는 목공실
망치질 한 번에 시름 너댓 축 날리고
톱질 한 번에 옹이진 미움 댓 말 썰어내고
대패질 한 번에 움푹 패인 아픔 한 마지기 떼어내
화톳불에 넣으면
멍에처럼 굽은 삶의 길목에 서 있는 김씨 아저씨
목에 맨 워낭소리 울리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입에 문 담뱃불에서 국화꽃이 피어난다.
낡고 부서지고 헤지고 오래된 것들은 버리지 말 것,
정겹고 익숙한 것들도 버리지 말 것,
새로운 것들도 가을볕에 갸웃갸웃 맨 얼굴 맨 살 드러나면
오래되어 낡은 것으로 변하는 법.
덧칠한 껍질 허물처럼 벗는 목공실
차가운 달을 삼켜 꽁꽁 언 주전자
뜨거운 해를 삼켜 활활 타는 난로 위에서
펄펄 끓는 동안
굽은 것은 굽은 대로
모난 것은 모난 대로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맵시를 다듬고 손맛을 내면
금 그은 책상 서랍 속에서
탄생하는 배내옷 같은 동화 한 편,
허물을 떼어내고
헤진 것을 기우고
거리를 잇고
면을 맞대면
때 묻은 의자에 앉아
성찰하는 가을볕 한 줌,
내가 사랑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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