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혹은 더 낮고 더 느리게
<가을, 혹은 더 낮고 더 느리게>
여름 볕은 들판을 분주하게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성찰 없이 뛰어 논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비를 피해 나무 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게 하필 모과나무였습니다.
모과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참 향기롭습니다.
가을 햇살은 터질 듯 살이 올랐습니다.
살이 오른 만큼 게을러져 들판을 느릿느릿 걷습니다.
벼 이삭이 고개를 숙입니다.
가을 햇살은 가슴을 드러내 놓고 유혹합니다.
은행나무가 잎을 떨구며 나목으로 섭니다.
파란 하늘은 은행나무를 안고 수유합니다.
은행 알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코스모스 핀 길은 낮게 깔려 바닥에 길게 드러눕습니다.
그 길가에서 웃자란 사랑은 시듭니다.
그 길을 밟고 눈동자 까만 계집애가 뒷모습으로 걸어갑니다.
가을 볕 따가운 밭에서 수숫대는 대낮부터 코끝 빨갛도록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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