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善若水-나의 가족

두 아이의 삶에 보내는 편지

nongbu84 2011. 9. 5. 19:34

사랑하는 동녘이 보거라.

가을이 찾아오고 있단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 같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단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온이 감돌고 있단다. 항상 몸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마음의 뜻을 굳게 하고 지내거라. 가을의 푸른 창공을 차고 오르는 매의 기상으로 세상을 살면 몸의 건강을 지키고 마음의 뜻을 펼칠 수 있단다. 거칠 것 없이 창공에 날개짓 하는 매의 자유로움으로 세상을 살면 네 인생은 아름다워진단다. 동녘이 네 안에는 네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참모습의 동녘이가 숨어 있단다. 동녘이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람이고 네가 알지 못하는 능력과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란다. 매처럼 하늘을 솟구쳐 오르는 기상으로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거라.

 

동녘이가 열일곱의 고등학생이구나. 인생의 뜻을 세워 그 뜻을 이루어나가려 땀 흘려 노력할 청춘(靑春)의 시간이란다. 동녘이 네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마음에 새기고, 그 원하는 소망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화시킬 시간이란다. 동녘이 너는 지금 청춘(靑春), 푸른 봄의 시간을 살고 있단다. 무엇인가 원하고 소망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고 도전해볼 인생의 기회란다. 청춘은 그 무엇인가에 온 정성을 기울여보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충분한 시간이 있는 특권이 있단다. 네 젊은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누려 살거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말고,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네 마음의 뜻을 믿고, 네 자신을 믿고, 네 스스로 뜻을 세워 네 스스로의 정성과 노력으로 뜻을 펼쳐 보거라.


도전하여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삶의 길을 알려준단다. 원래 세상이 큰일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고통도 함께 부여한단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고 시험한단다.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선 자에게 세상은 자유의 길을 열어주며, 중요한 역할을 맡긴단다. 동녘아! 네게 찾아오는 시련과 고통은 세상이 너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란다. 네가 겪는 시련과 어려움과 고통은 네가 가야할 목적지를 안내해주고 인도해준단다. 네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 네 인생의 뜻을 이루어 보거라.


고통과 아픔 없이 성장하는 청춘은 없단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거란다. 몸살 앓는 조개만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 수 있단다. 조개는 자기 살 속을 파고드는 모래알을 통해 진주를 만드는 고통의 과정을 겪는단다. 고통과 시련을 견딘 조개만이 가장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 수 있단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새는 가장 센 바람을 견딘 새란다. “가장 높이 날아올라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새”가 되려면 동료아 친구를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하며, 혼자 남모르게 노력하는 노력의 과정이 필요한 법이란다.


동녘아! 당장 눈앞의 편안과 재미보다는 네 인생전체를 행복하게 만들고 이 세상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오히려 불편과 시련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거라. 눈에 보이는 편안과 재미는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단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볼 수 있단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네 인생의 미래가 보이고 세상에서 중요한 일들을 볼 수 있단다.


당장 네 눈에는 세상을 사는 어려움만이 보이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한계가 자주 보여 포기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든단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눈에 한계와 어려움이 보인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일을 간절하게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다는 의미이며, 그 한계는 포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넘어서야 할 과정에 지나지 않는단다. 늘 원하는 인생은 한계 너머에 존재한단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신의 마음으로 극복하는 거란다.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고 안된다는 판단이 들면, 그 일은 네 마음의 소망과 의지로 극복하는 거란다. 이성의 판단으로는 비관적이더라도 의지와 신념의 마음으로 극복하는 거란다. 동녘이 너는 당장의 편안과 재미에 빠져 눈앞의 이익을 쫓는 모습보다는 세상의 희망과 꿈이 되기 위해 어려움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어울린단다.


눈앞의 이익을 쫓아 사는 열 사람이 손해를 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삶의 뜻을 펼쳐나가는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단다. 이해관계를 따져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단다. 동녘아! 네 길을 걸어가거라.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면서 너의 길을 가거라. 네가 세상에 네 뜻을 펼치며 살아가려는 일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가로막을 장애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동녘이 네가 네 자신을 믿고 네가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임을 가슴에 새겨 당당하게 세상에 네 뜻을 펼치는 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하늘은 삶의 뜻을 세워 자기 길을 스스로 가고자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법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가꾸어 세상에 나누어주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응원한단다. 하늘은 스스로 자기 삶을 돌보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며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을 동원하여 도움을 주며,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아끼고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사랑한단다.


동녘아! 너도 알고 있듯 네 인생은 네 자신의 것이란다. 그 누구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단다. 동녘이 네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네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다. 동녘이 네가 네 삶의 연출가이자 주연배우이며, 동녘이 네가 네 삶의 설계사이며 건축가란다. 네 스스로 네 삶을 살아가거라. 엄마 아빠는 네 인생을 항상 지켜보며 응원한단다. 네가 어떠한 삶을 선택하든 네 삶을 지지하고 응원한단다. 네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엄마 아빠는 동녘이 너를 항상 기다리며 응원할 거란다.


동녘아! 세상에 네 뜻을 펼쳐나가고자 한다면, <장산곶매>의 ‘부리질’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단다. 황해도 구월산 기슭의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장산곶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매가 살았단다. 사람들이 장산곶매라고 불렀는데, 이 매는 일 년에 한두 번 사냥을 떠났단다. 사냥을 하는 장소는 좁은 우리나라 반도가 아닌 시베리아반도나 중국대륙이었단다. 그런데 장산곶매가 사냥을 떠날 때 하는 이상한 행동이 있었단다. 그것을 사냥을 떠나기 전날 밤 자기가 지금까지 살았던 소나무 숲속의 둥지를 자신의 부리로 모두 쪼아 부수어 버리는 행동이었단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는 소리가 천둥번개처럼 크게 울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단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떠난 장산곶매는 생사를 건 사냥을 한단다. 특히 장산곶매가 좋아한 먹이는 곰의 생간이었단다. 곰과 목숨을 건 싸움을 펼치고 사냥에 성공하면 곰의 생간을 꺼내먹고 나머지 고기는 놓아두고 다시 사냥을 떠났단다. 나머지 고기는 사냥을 하지 못하는 약한 동물들에게 남겨주는 것이었단다.


동녘아! 장산곶매의 부리질은 자신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다시는 되돌아 올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결연한 삶의 자세란다. 마치 벼랑 끝에 선 배수진의 전법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거란다.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되돌아 갈 곳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는 법이니까 돌아올 곳을 부수어 그 뜻을 이루려 함이란다. 동녘이도 마음에 뜻을 새겨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는 되돌아올 여지가 없이 결연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가는 거란다. 그리고 온갖 노력과 목숨을 건 정성 속에서 얻은 획득물은 자신 혼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미련 없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배려와 나눔의 사랑이 필요하단다. 무슨 일이든지 온갖 정성이 필요하단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온 정성을 쏟아야 얻을 수 있단다. 공짜로 얻는 것들은 없고, 공짜로 얻으면 다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는 법이란다. 누군가 공짜로 준 게임은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영혼을 파는 댓가를 지불하게 만든단다. 하늘도 감동할 정도의 남모르는 노력을 통해 네 뜻을 이루어 성취하고, 네 노력과 정성으로 얻은 너의 능력은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가거라.


동녘아! 이 세상은 노력을 통해 능력을 얻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동녘이 네가 꿈을 만들고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고, 그 이룬 꿈은 세상이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있단다. 세상은 자신이 마음먹고 생각한 만큼 살 수 있단다. 마음의 크기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살 수 있단다. 자신 혼자만의 이익만큼 생각하며 살면 그만큼의 인생이 되고, 세상에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만큼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만큼 세상을 살 수 있단다. 마음과 뜻의 크기가 네 인생의 방향과 모양을 만든단다.


동녘이가 열일곱 번째 생일이구나. 동녘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함께 살고 있음을 아주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너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은 엄마 아빠의 행운이자 행복이란다. 동녘이가 태어나서 늘 고맙단다. 늘 네 삶을 아끼고 사랑하며 네 자신을 존중 하며 살거라. 넌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사람이고 단 한 번뿐인 네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다. 이 세상과 사람들은 동녘이 네가 꿈을 펼치고 능력을 발휘하여 도움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네 인생에는 세상과 사람들의 소망과 기대가 들어있단다.


동녘아 ! 사랑한단다. 항상 네 삶을 응원하며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한단다. 항상 네 꿈을 사람하며 네 노력을 사랑한단다. 사는 건 그 무엇인가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그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란다. 특히 친구를 사귈 때는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네 등에 짊어지고 가는 수고가 필요하단다. 인디언들의 말로 친구란 “상대의 슬픔과 아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란 의미가 있단다. 비가 오는 날 친구와 함께 걷다보면 너는 우산이 있는데 친구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는 경우가 있단다. 그 때는 네 우산 밑으로 친구를 불러 함께 쓰고 갈 일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비를 맞는 거란다. 우산이 있는 네가 그 친구와 함께 처지를 겪는 거란다. 어렵고 불편한 처지를 함께 나누며 우정을 나누는 거란다. 우산을 살 수 없는 그 친구에게 한 번의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자칫 동정에 지나지 않고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 쉽단다. 오히려 비를 함께 맞으면서 처지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뜻을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친구는 처지를 나누며 인생의 큰 뜻을 결의하는 사이란다. 용기 잃지 말고 네 꿈을 가꾸고 네 친구들을 사랑하거라.


2011.09.05(음력 08월 08일) 동녘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아빠가 쓰다.

 

사랑하는 하람이 보거라.

하람아! 가을이란다. 가을은 차분하게 삶을 반성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사색(思索)의 시간이란다. 자기 삶을 생각하고 차분하게 검토하고 성찰하는 삶은 아름답단다. 소크라테스는 “검토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울에 자신의 용모를 비추어 살피듯 자기 삶을 자신의 이성에 비추어보는“관조(觀照)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단다. 거울이 없던 옛 시절에는 물에 자기의 얼굴과 외모를 비추어 살펴보고 단정하게 다듬었단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행위를 인격수양과 반성의 최고로 삼았단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나의 삶과 모습을 보면, 나의 사랑이 드러나고, 나의 부족함과 나의 사람됨이 드러난단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하늘이 부여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자를 <군자>나 <대장부>라 일컬었단다.

아빠가 오늘 하람이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다.  그만큼 네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단다. 아빠는 이제 세상에 의혹(疑惑)이 없는 불혹(不惑)의 세월을 지나 하늘이 부여한 사명감을 겨우 깨닫고 겸손해질 지천명(知天命)의 세월로 접어들고 있단다. 이 세월에 아빠가 드는 생각을 전해주고 싶단다.


하람아! 사는 일은 길을 걷는 일과 비슷하단다. 스스로 불편과 가난을 선택하여 걷는 일이란다. 사는 일은 낯선 여인숙에 하룻밤을 묵는 일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란다. 창에 비친 분바른 달빛을 서글프게 바라보며 외로워하는 일이란다. 그런데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삶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힘은 함께 하는 동행에서 나온단다. 불편과 가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함께 걷는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하람이 네가 있기 때문에 아빠가 살아가는 거란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란다. 하람이 너는 아빠가 살아가는 이유를 주고 있으며, 너로 인해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고, 아빠의 인생이 더 행복해지고 있단다. 톨스토이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사랑”에서 찾고 있단다. 이 책에서 신의 명령을 거역한 천사 미하엘은 하나님의 세 가지의 질문을 해결하여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단다. 하나님이 미하엘에게 준 세 질문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단다. 미하엘은 인간세상의 경험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자비와 사랑>이 있음을 깨달으며, 사람에게는 <자신의 장래와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단다. 아빠는 요즘 사랑받는 일보다는 사랑하는 일에서 더 큰 행복을 얻고 있단다. 아빠의 인생이 걸어가는 이유도 사랑하기 위함이란다.


사람은 앉아 먼 곳을 보며 몽상에 잠기려 태어난 것은 아니란다. 각자 자신의 삶의 길을 걸어가려고 태어났단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자기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단다. 사람은 누구나 떠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돌아오고 배웅하고 마중하며 삶의 길을 간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이 있는 길을 가기도 한단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길을 간단다. 이 만큼이라도 함께 할 수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그 누군가를 사랑할 사람이 나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동행의 길을 간단다. 사람은 누구나 그 누군가와 함께 동행하며 살아간단다. 단 한번뿐인 삶에서 단 한번뿐인 순간을 살며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을 만나 함께 동행하며 살아간단다. 이 생애 단 한 번뿐인 삶의 시간에서 단 한번뿐인 만남을 가지며 살아간단다. 모든 순간은 단 한번뿐인 인생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단 한 번의 인연이란다. 이것을 일기일회(一期一會)라 한단다. 하람아! 너와 나의 만남도 알고 보면 단 한번뿐인 네 인생과 아빠인생에서 단 한 번의 만나고 있단다.  아빠는 그 만남의 시간이 항상 행복해지기를 기도하고 있단다. 너로 인해 이 세상이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하고 너로 인해 이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단다.

 

하람아!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이고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그 누군가와 함께 걷는단다. 나는 누군가 걸었던 길의 이정표를 보고 걸으면서, 나 또한 내가 걷는 길을 걸어올 그 누군가의 이정표로 자리 잡는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 바로 옆에서 그 누군가가 걷고 있단다. 그 누군가가 걷고 있으므로 나는 걷는단다. 누군가가 걷다가 힘들어하므로 나는 그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난단다. 누군가가 걸으면서 가방이 무거워 힘들어 하면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발이 아파 쉬면 감싸주고, 그늘을 찾으면 그늘이 되어주고, 쉬면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의자가 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란다. 사랑할 일이 있으므로 살아간단다.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임으로 나는 함께 걷는단다. 함께 걷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걷는단다. 사는 일은 함께 걸으면서 사랑하는 일이고 사랑으로 걷는 일이란다.


 걸음을 옮길 때 큰 산의 오르막이 걸음을 방해하지는 않는단다. 가시 덩굴로 엉켜 있는 길 없는 산속이 걸음을 방해하지도 않는단다. 자갈로 뒤덮인 시냇가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란다. 사람은 움푹 패인 웅덩이가 있어도 걸을 수 있단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도 걸을 수 있단다. 누군가가 붙잡아도 뿌리치고 걸어갈 수 있고, 산이 높고 험해도 걸어 갈 수 있단다. 걸음을 방해하는 건 거친 환경도 붙잡는 사람도 아니란다. 걸음을 방해하는 건 바로 내 양말을 파고든 모래알 한 알이란다. 모래알은 발바닥에 물집을 만들고 상처를 내어 걸을 수 없도록 한단다. 살다보면 내 맘의 작은 것들은 발목을 채이도록 하여 넘어뜨리고 걸음을 방해한다. 하람이 네가 원하는 삶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환경도 아니란다. 네 안에 있는 마음 하나가 네가 원하는 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단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려는 마음 하나,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마음 하나가 자신의 길을 방해한단다. 자신의 마음 속 모래알 하나를 꺼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갈 수 있단다.

 

하람아! 휴식을 할 때는 가야할 먼 산 너머의 들판을 바라보고, 산을 걸을 때는 바로 발밑의 나무뿌리와 작은 돌멩이와 미끄러지는 곳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단다. 그늘에 앉아 쉴 때는 들숨날숨으로 쉼 호흡을 하고 사막 저편의 푸른 들판을 그리워할 줄 알고, 사막을 건너 갈 때는 푹푹 패이는 사막의 모래알 하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옮기는 정성이 필요하단다. 쉼 없이 갈 수는 없단다. 쉬면서 모래알 서걱거려 바짝 마른 사막으로 변한 마음에 사람으로 향하는 걸음소리를 울리고, 걸을 때는 앞서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며 뒤이어 올 사람들의 눈빛이 머무를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가 필요하단다. 휴식할 때는 가야 할 곳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며 걸을 때는 아쉬움을 버리고 떠나야 한단다.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자만이 바다에 도달하여 배를 만들어 항해할 수 있단다. 가야할 곳은 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법이란다. 살아가는 일도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를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노력과 땀이 기울여야한단다. 꿈이란 원래 불가능한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현실로 증명하는 거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꿈일 수 없고 꿈은 불가능하지만 의지와 신념으로 불가능을 가능한 현실로 만드는 거란다. 이성적으로는 비관적이더라도 마음의 의지와 믿음으로 낙관하며 노력하는 거란다. 눈에 보이는 한계는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지만 마음의 의지와 신념은 한계는 넘어설 선에 불과하단다.


 걸으면서 아무 곡절이나 사연 없이 걸을 수는 없단다. 걸으면서 아무 사건이나 사고 없이 걸을 수는 없단다. 추억 없이 걸을 수는 없단다.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건을 일으키며, 추억을 만들어 사람마음을 파고들면서 걷는단다. 걷다가 넘어져 상처 나고 아파하기도 한단다. 걷다가 함께 하는 사람과 헤어져 슬퍼하기도 한단다. 걷다가 길을 잃어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걷기도 한단다. 걷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그 곳을 짚고 일어서는 것이란다. 누가 일으켜 줄까 기대하지 말고 넘어진 바로 그 곳을 손으로 짚고 일어서서 다시 걷는 거란다. 걷다가 넘어진 그 곳은 곧 짚어야 할 자리란다. 사는 일도 헤어진 그 자리에 만남이 찾아오고, 슬퍼서 운 그 자리에 기쁨이 돋아나고 상처 난 자리에 새살이 돋는단다. 가지 꺾인 자리가 옹이가 되고, 꽃잎 떨어진 그 곳에서 열매가 나듯, 살면서 넘어진 그 자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리란다.


하람아! 길을 걷다보면 동행하는 친구가 미워하는 사람보다 더 보기 싫은 날이 많아진단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우주만큼 커 보여 아파지는 날이 많아진단다. 내 발밑의 모래알이 송곳처럼 파고들어 동행하는 사람의 지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단다. 혼자 아파하며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단다. 그럴수록 걷는 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산을 자주 보아야 한단다.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산의 품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거란다. 너그러운 바다를 떠안고 있는 산줄기의 푸른 근육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 거란다. 자신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면서 스스로 걷는 자들을 도와주는 산을 한없이 바라보는 거란다. 산은 스스로 걷는 자들을 도우며 온갖 것들을 동원하여 걷도록 응원한단다. 스스로 걷을 수 있는 자는 마음에 사랑을 담고 자신의 길을 걷는 자란다. 길을 걸을 때 동행하는 친구가 되려면 상대의 슬픔과 아픔을 내 등에 짊어지고 가는 수고가 필요하단다. 인디언들의 말로 친구란 “상대의 슬픔과 아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란 의미가 있단다. 비가 오는 날 친구와 함께 걷다보면 나는 우산이 있는데 친구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는 경우가 있단다. 그 때는 내 우산 밑으로 친구를 불러 함께 쓰고 갈 일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비를 맞는 거란다. 우산이 있는 내가 그 친구와 함께 처지를 겪는 거란다. 어렵고 불편한 처지를 함께 나누며 우정을 나누는 거란다. 우산을 살 수 없는 그 친구에게 한 번의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자칫 동정에 지나지 않고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 쉽단다. 오히려 비를 함께 맞으면서 처지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뜻을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함께 걷는 동행의 친구는 처지를 나누며 인생의 큰 뜻을 나누는 결의가 필요하단다.


하람아!길을 걸을 때 함부로 자만할 일이 아니며 함부로 주저앉을 일이 아니란다. 묵묵히 우직하게 소의 걸음처럼 걸어가는 거란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단다. 소의 걸음으로 천리 길을 걸어가는 거란다. 뭍소의 뿔처럼 혼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거란다.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며, 그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신의 길을 가는 거란다. 네가 원하는 마음속 길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는 거란다. 길을 걷고 나면, 걷고 난 길을 기념할 일이란다. 하지만 길을 걷고 걸은 자리에 돌로 만든 기념비를 세울 일은 아니란다. 돌로 만든 기념비는 풍상과 세월을 겪으면서 돌가루로 변할 뿐이란다.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걸었던 자리에 파둔 우물이란다. 걷고 나면 누군가 걸을 길에 오아시스 같은 우물을 파둘 일이란다. 그 우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며, 길을 걸으면서 갈증을 겪는 자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할 거란다.

2011.09.05 하람이의 삶을 생각하며 아빠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