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善若水-나의 가족

물고기 알이 전해준 행복

nongbu84 2010. 8. 12. 13:32

물고기 알이 전해준 행복  

꼭 이맘때 벚꽃이 떨어지는 날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벚꽃잎사귀가 떨어져 눈송이 날리듯 거리를 떠돌면 이미 7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가 1학년 11반 담임을 하던 해 수학여행을 앞두고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더이상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던 아버지께서 수학여행을 마치고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날 돌아가셨다. 대전역에서 내려 공주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손을 잡고 3시간 가량 임종을 지켜보고 아들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전화목소리를 듣고 마지막 안간힘으로 숨을 고르던 아버지께서 숨이 딸깍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쓰러진 상태에서 나는 수학여행에 참여했었다. 그때 고속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경주의 거리거리마다 벚꽃 잎사귀가 눈송이처럼 날렸다. 무척 슬프게 벚꽃 송이가 눈발처럼 날렸다. 그리고 아버지 49제를 봉곡사라는 절에서 지냈는데 그 날도 벚꽃은 눈송이 날리듯 떨어졌었다. 벚나무 밑에는 수북하게 꽃잎이 쌓였다. 그래서 나는 벚꽃이 떨어지는 날이면 아버지 생각에 몸살을 앓는다.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지난 금요일 연가를 내고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새로 지은 집 정리와 창고를 짓느라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오래간만의 일이라 망치질 몇번에 손목이 시리고 힘이 빠졌다. 망치를 든 손은 헛손질을 하였고 결국 엄지 손가락을 치고 말았다. 아리도록 아팠다. 그때 걸려온 아들녀석의 전화를 어머니는 전해주었다. "얘야! 꼭 바꾸어 달란다. 아빠 지금 일하고 있어서 받을 수 없다니까 꼭 할말이 있다고 바꾸어 달란다. 어서 전화 받거라."

아들녀석의 전화를 받으니 하고 싶은 말은 속에서 맴돌고 허겁지겁 마음만이 앞서는 느낌이었다. 아들녀석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이런 증상을 보인다. "아빠 있잖아. 아빠 그런데......근데 아빠!" 아니나 다를까 아들녀석은 속에 제 아비에게 빨리 알려주고 것을 숨기고 있었다.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말만 서두르고 있었다. 아들녀석이 전해준 소식은 물고기가 알을 낳았다는 이야기였다. 물고기가 알을 낳은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물고기를 키우는데 알을 낳으면 잡아먹는 습성때문에 지난 겨울에 나머지 물고기 다섯마리를 우리집에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얻게된 물고기 다섯마리 중에 한마리가 지난 겨울에 알을 낳았었는데 그만 우리집에서도 다른 물고기들이 알을 다 먹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때 아들녀석은 그 물고기 알을 매일 아침 들여다보고 보호하느라 밤잠을 설치며 먹이를 주고 공을 들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 잡아먹었으니 실망도 컸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물고기를 낳았으니 얼마나 기쁨이 컸을까? 아들녀석은 시골에 있는 제 아비에게 전화로 자랑을 해댔다. 야단스럽게 말을 하였다. 내가 물을 틈도 없이 제 자랑만 늘어놓더니, 아니 기쁜 소식을 전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다음은 우리 어머니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들녀석처럼 <시골에 있는 제 아비한테 전화를 건 아들녀석의 행동>을 문제삼아 또한 즐거워하였다.

"아니? 어쩜 9살짜리 녀석에 제 아비한테 꼭 할말이 있다고 꼭 바꾸어 달라고 그런다냐? 애비가 일을 한다고 바꾸어 줄 수 없다고 하여도 바꾸어 달라고 하니 내참 신기해서.........."

어머니는 또박또박 들려오는 아들녀석의 전화목소리와 할말이 있다고 그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바꾸어달라고 하는 아들녀석의 투정이 너무나 귀여웠던 것이다. 이 일을 어머니는 매형과 누나들한테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는 기쁜일이 있으면 기쁜대로 그 기쁨을 마음껏 여러번에 걸쳐 이야기를 하면서 즐기고, 슬픈일이 있으면 슬픈대로 그 슬픔을 눈물지으면서 두고두고 이야기 하시는 분이다. 이번 아들녀석의 전화사건도 어머니의 마음속에서는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면서 부르는 행복한 노랫소리가 될 거란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아빠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전화 좀 바꾸어주세요"란 또렷한 목소리와 비밀스런 느낌이 어머니에게는 즐거운 곡조였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기쁘고 행복한 노래가 생겼으니 나로서는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두고 마음에 새겨둔 손주녀석의 전화사건을 이야기할 것이며 자꾸 우려내어 잔잔한 이야기 뒤끝의 여운을 즐길 것이다. 언제든 꺼내어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고 언제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언제든 즐거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고 누군에게든 자랑삼아 할 수 있는 비밀이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다. 

아들녀석의 <전화 한통화>는 어머니가 며칠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이유이다. 손주녀석의 그 목소리의 신비함과 말하지 않은 비밀스러움은 할머니인 어머니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이다. 어머니가 가슴에 간직하고 계속 우려낼 비밀스러움은 삶의 즐거움이 된다. 은근히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은근히 억누르고 싶은 이야기와 경험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손주녀석의 전화 한통화는 그런 신비와 비밀스러움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전화한통화가 사람에게 이렇게 엄청난 의미를 지닐 줄을 내 예전에는 몰랐었다.

그래 맞다. 전화 한통화는 사람에게 "기다림의 행복"을 안겨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행복함>은 전화한통화라도 충분하다. 먼 곳에 파랑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미래나 과거에 파랑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바로 자기 집의 처마밑에 파랑새는 있는 것이다. 바로 자기 집안의 가족관계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과 그 행복한 시간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새참이 궁금해질 그 간식의 시간에 잠깐만 여유를 내어 <아버지에게 전화 한통화>드리는 정성만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쉬는 시간 아빠회사에 전화를 걸어 "아빠 힘드시죠? 저도 힘들지만 꼭 참고 열심히 살아갈게요" 하고 전한다면 이때부터 아버지는 몸이 달아오를 것이다. 아들녀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는 들썩이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며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힐 것이다. 저녁시간 되돌아가 저녁식탁에 아들녀석을 볼때까지 아버지에게는 보고싶은 아들녀석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을 것이 다. 바로 그 기다림의 시간이 아버지의 행복한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기다리는 행복함은  바로 전화 한통화로도 충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 상대를 생각해보는 그리움은 뼈에 사무치도록 아리며 잔잔하게 다가온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물고기 알의 소식은 나와 어머니의 행복으로, 전화한통화는 퇴근할때까지 아버지의 행복함으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행복의 시간을 위해 전화 한통화 드리는 성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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