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春禮讚
100원을 가진 어른보다 1000원을 벌어들일 꿈을 가진 젊은이가 행복하다.
소형 승용차를 가지고 운전하는 어른보다 자동차를 설계할 꿈을 가진 젊은이가 더 행복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어른 보다 부자인 것은 그들의 마음 밭에 가능성과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이미 정해진 삶보다는 변화 발전 할 가능성을 지닌 삶이 늘 풍요롭다.
어른들은 이미 정해진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
어른들은 이미 정해진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며 이미 정해진 술과 담배에 익숙하다.
어른들은 닳고닳은 신발과 주름 펴진 바지를 입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어른들은 술집을 정해 놓고 술자리를 만든다.
어른들은 이미 정해진 생활 스타일을 벗어나는 데 불안해한다.
어른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사람과 만난다.
어른들은 이미 정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주로 보며 새로운 것에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다.
어른들은 이미 좋아하는 색깔이 있으며, 이미 좋아하는 유행가 가락이 있다.
어른들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지금 눈앞의 이익과 편안을 추구하는 데 익숙하다.
미래를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가꾸어 온 생활을 바꾸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오고 다녔던 길을 다시 걸을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삶의 여유가 더 없고 더 조급한 생활에 쫓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을 늘 추구한다.
젊은이들은 상표 달린 옷을 입기도 하고 모자를 즐겨 쓰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노래를 유행으로 만든다.
젊은이들은 편한 옷을 선택한다.
젊은이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걷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담배를 피는 불균형을 즐긴다.
젊은이들은 틀에 박힌 타성을 싫어한다.
젊은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위험한 밤길을 걸어서 새벽에 도착하고자 한다.
젊은이들은 질서보다는 혼돈 속의 용틀임과 솟구치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젊은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운동장을 뛰어 놀기를 좋아한다.
젊은이의 삶은 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상처를 입어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젊은 삶의 특권은 자유롭게 탐색하여 기회를 만들 수 있고
도전하여 실수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둔 새벽길을 걸어 큰산을 넘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자신이 겪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그 불편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불편함과 어려움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다.
이미 정해진 틀에 박힌 삶보다는 모나고 굽어있고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삶이 풍요롭다.
2001. 03. 27. 가능성과 꿈을 찾는 청춘을 예찬하며 여름지기 적다.
청춘유감
이 청춘들아!
왜 꿈이 없는가
왜 가슴에 잡초만 우거지고 알곡을 키울 싹은 보이지 않는가
우리 마음은 밭과 같아 잡초와 같은 마음이 있는가 하면
곡식같은 마음이 있는데, 어찌 이 젊은이들의 마음에는 잡초만 무성한가
이청춘들아!
자기의 삶을 정면으로 맞서보게나.
어느 날 거울 앞에섰을때 거울 속의 사내가 너무도 낯설게 보이고 타인처럼 느껴질 때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으로 바람 달겨드는 골목길을 걸을때
오늘 처럼 함박눈이 종이장 날리듯 흩뿌릴 때
문득 문득 찾아오는 삶의 질문들을 정면으로 맞서 고민하게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삶의 고민들과 맞서 밤새워 고민하고 또 생각해보게나.
이청춘들아
삶의 진실과 맞닿는날
자기의 진실한 모습과 마주치는 날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도피하지 말게.
자기를 잊으려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네.
요란한 구경거리에 현혹되지 말고
순간적인 재미에 빠지지 말고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오락에 빠지지 말고
이제는 자기의 모습을 붙들고 울부짖게나.
자기의 삶을 꼭 부여잡고 엉엉 울기도 하며
야단도 치고 회초리도 대고 가슴뻐근한 감동도 느끼고
따뜻한 인정도 베풀게나.
이 청춘들아!
어느 날 텔레비젼의 유혹에 빠져 그 가상과 환상에 취해 자기를 잊고 애국가 나올 때까지 본 후 텔레비젼을 껐을 때
느껴지는 허무감, 그 허무감이 자기를 만나는 순간이네.
일상의 반복속에서 느끼는 답답함, 억눌림,
일과 일, 사람과 사람속에서 느끼는 가위눌림
그 답답함이 바로 나일세.
더 이상 자기를 잊으려 애쓰지 말게
더 이상 내 삶에서 도망치지 말게
더 이상 그 답답함을 자극적인 유혹, 선정적인 눈요기감, 충격적인 장면, 배배꼬인 인간관계를 통해 건강함을 해치는 드라마의 뻔한 줄거리에서 찾지 말게.
이제는 살아있는 동안의 칠 팔십년 인생에서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일을 만드는 데서 찾게.
우리가 이세상 태어났을 때
우리가 이세상을 떠날 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일세.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살아있는 동안을 책임지는 일일세.
자기 삶의 연출가가 되고
자기 삶의 설계사가 되고
자기 삶의 지휘자가 되는 일일세.
이 청춘들아!
더 이상 자기를 숨기지 말게.
더 이상 자기를 잊으려 애쓰지 말게.
자기를 숨기려 친구들의 무리에 파묻혀 보지만 결국 내 외로움만 커지는 법일세
자기를 잊으려 컴퓨터 오락에
텔레비젼 프로에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사면서 느끼는 베푸는 자의 자기 도취 행위속에
소비는 미덕이고 소비자는 왕이라는 제왕된 자기의 자기 기만 속에
빠져 보려 할 걸세.
하지만 나를 잠시 잊은 것 뿐이고
잠시 나를 속인 것에 불과하네.
어느 날 문득 눈이라도 내리면
어느 날 문득 혼자 여행이라도 가면
어느 날 문득 친구와 싸우고 나면
어느 날 문득 애쓰던 일일 실패하면
허무감으로만 남은 나를 볼걸세.
답답함으로만 앙상한 나를 볼걸세.
외로움으로만 옷걸친 나를 볼걸세.
청춘들이여.
네 옆의 아저씨를 보고
슈퍼가게 앞에 술취해 넋두리하는 사람을 보게.
녹슨 기차길을 걸어가 보게.
어릴 적 책갈피에 끼워진 갓난아지 적 사진을 보게.
초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를 다시 보게.
굽이 닳은 신발장의 구두를 보게.
닳고 닳은 이름들과 별명들이 적이 네 책상을 보게.
수많은 손들이 스쳐갔을 책상서랍속의 먼지를 검지손가락 끝에 묻혀 훅 불어보게.
빛 바랜 책장의 책처럼 기울어져 가는 내 삶을 보게.
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슬픔을 보게나.
무릎팍 아직도 남은 상흔을 어루만져 보게나.
그리고는 자기를 사랑하게나.
그 아픔까지도 꼭 껴안고 사랑하게나.
청춘이여!
유감일세.......
2001.03.29. 함박눈이 종이장 처럼 날린 날 여름지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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