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과 사람의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는 섬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섬에는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새가 하늘을 날고, 어떤 어둠이 내리고, 안개가 어떻게 피어오를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가고 싶어 하는 섬은 어디에 있을까? 조약돌이 오줌 누는 소리에 있을까? 대나무 그림자가 쓸고 간 마당에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눈물로 다가가면 도달 할 수 있을까? 그리움으로 다가가면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2. 사람과 사람의 만남 :“一期 一會”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가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입니다. 혼자 걸어가야 하는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솔숲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밟는 걸음마다 솔잎의 푹신함이 느껴집니다. 꼬불꼬불 할머니 지팡이처럼 길은 이어집니다. 너무 빨리 달려와 참 좋은 풍경을 지나쳐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이어 걸을 것이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그 누군가와 함께 걷습니다. 그 누군가가 걷고 있으므로 함께 걷습니다. 누군가가 걷다가 힘들어하므로 그 사람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고 일으켜주고 기다려주면서 걷습니다. 발이 아파 쉬면 감싸주고, 그늘을 찾으면 그늘이 되어주고, 쉬면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의자가 되면서 걷습니다. 사랑할 일이 있으므로 걷습니다.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걷습니다. 함께 걷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걷습니다. 사는 일은 함께 걸으면서 사랑하는 일이고 사랑으로 걷는 길 입이다.
길을 걷고 나면 걷고 난 길을 기념할 일입니다. 하지만 기념비를 세울 일이 아니라 우물을 파둘 일입니다. 돌로 만든 기념비는 풍상과 세월을 겪으면서 돌가루로 변할 뿐입니다.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걸었던 자리에 파둔 우물입니다. 누군가 걸을 길에 오아시스 같은 우물을 파두면 이정표 역할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 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 할 껄..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 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그때 그 사람이 최고의 사람이며, 그 때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며, 그 때 그 일이 최고의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보물이며,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이며, 모든 일이 함께 나누어 마시는 물입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만남입니다. 일기 일회입니다. 그 때 그 순간, 그때 그 사람, 그 때 그 일이 최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때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그 때 그 일과 그 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이곳입니다. .............
3. 사람과 사람의 헤어짐 :“時節 因緣”
사는 일은 낯선 여인숙에 하루를 묵는 일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입니다. 창에 비친 분바른 달빛을 서글프게 바라보며 짐승 같은 달빛의 숨소리를 듣고 외로워하는 일입니다. 살갗을 아프게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는 일입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삶의 길을 견딜 수 있는 힘은 함께 하는 동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떠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돌아오고 배웅하고 마중하며 삶의 길을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이 있는 길을 갑니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이 만큼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길을 갑니다.
걸으면서 곡절이나 사연 없이 걸을 수는 없습니다. 걸으면서 사건이나 사고 없이 걸을 수는 없습니다. 추억 없이 걸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건을 일으키며, 추억을 만들어 사람마음을 파고들면서 걷습니다. 걷다가 길을 잃어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걷기도 합니다. 걷다가 함께 하는 사람과 헤어져 슬퍼합니다.
장석남, <어지러운 발자취-해변에서>
이제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자
거기에 가는 시선을 거두고
물가에 서 있던 마음도 거두자
나를 버린 날들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어
멀리 바람의 길목에 이르자 처음부터
바람이 내 길이었으니
내 심장이 뛰는 것 또한 바람의 한
사소한 일이었으니
만나면 헤어지고, 떠난 자 돌아옵니다. 헤어지면 만나고, 돌아온 자 떠납니다. 바람 불 듯 흐릅니다. 흘러가고 에돌아가고 굽이치고, 막히면 통하고 통하면 막다른 곳입니다. 골목길은 에돌아나오면 다시 길입니다. 다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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