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묵호 1 - 방문

nongbu84 2017. 7. 12. 15:37

묵호 1 사랑

 

모든 골목의 모든 집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당신이 그 골목 어딘가에 살았다고 하길래


지붕을 검은 끈으로 동여맨 재술네를 돌아

무화과가 짓물러 떨어지는 얼음 집을 비껴

대추나무 목에 별빛이 가시처럼 박힌 송방을 지나

골목길 돌고 돌아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렸지요


비탈진 곳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느라

빨간 약을 바른 대문과 반창고를 붙인 담을 세우고 있었고요


앞 뒤 곁 위 아래를 다 내준 슬레이트 집 밥상에는

바람에 긁힌 쑥갓이며 상추와 부추가 소금에 절인 가난과

얼버무려져 여전히 짠 맛이 대문너머까지 풍겨왔고요


대문 파란 집에서는 비탈의 근육에 매달린 가지가 빛나고

호박넝쿨은 굵은 머리 숱을 한없이 흩날리며 긁적였지요


한 쪽으로만 쏠린 가자미 눈 같은 집을 바라보다가

몇 해를 옆으로 누워 석양만 보았을 마지막의 당신이 떠올랐지요

 뾰족한 바다 바위를 맨발로 걷는 듯 발바닥이 콕콕 쑤셨습니다


결국 살구나무 허리에 새끼줄을 둘러 부고장을 꽂던 

그 집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설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이 살아 있어야 할 집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하길래

 

그래 당신의 신발에 가득 차 출렁거리던 파도 소리와

막 씻어 건져 올린 당신 눈 속의 노을은 남겨 놓기로 했지요


담 너머 손바닥 만한 밭에 파랗게 핀 도라지꽃만 

까치발을 들고 한참을 바라 보다가 

빗물이 쓸고 간 그 집 골목길을 단숨에 치고 올랐습니다


언덕에 올라 빨간 등대처럼 

눈이 짓무르도록 먼 수평선만 바라보았지요 


그 날 나는 바다가 검푸른 도라지꽃을 

자꾸 토해 내는 걸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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