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물뱀 사라진 저녁은 무릎시리다
고향집 앞마당 우물을 들여다보는데
옛날부터 전해오는 얼굴이 보입니다
그리운 마음에 이름 부르면
물비린내 배인 메아리만 들리고
그 사람 길어내려 두레박 내리면
곤두박질치는 현기증만 납니다
오래된 우물 저 아래 출렁이는 저 사람
기어코 길어 올리리라 다시 내려 보지만
물뱀 한 마리만 담겼다가 이내 빠져나가
모가지를 꼿꼿이 쳐들어 나를 노려봅니다
여름 한 계절 방향 없이 솟구친 저 원시의 눈빛,
손아귀 벗어난 호스처럼 날뛰던 저 최후의 욕망이여!
마침내 삽날로 모가지를 쳐도 죽지 않던 사랑이
우물 안벽 돌덩이 틈에 제 허물을 남기고
푸른 이끼를 덮을 때
청바지처럼 해진 가을의 무릎 언저리가
아침 저녁으로 자주 시려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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