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달디단 뒷배 ㅡ외할매 생각

nongbu84 2017. 8. 29. 11:41

 

외할매 생각 - 달디단 뒷배

 

이른 아침 잠이 덜 깨 누워있으면 아버지는 논흙 묻은 바지 냄새를 풍기며 방으로 돌아오셨다 벼는 새벽마다 논두렁길을 뒷짐지고 절뚝거리며 걷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내가 자주 찾던 화곡동 헌책방은 가난한 대학 시절의 든든한 뒷배였다 122번 버스를 타고 내려 집으로 가던 길 자주 들러 니체며 까뮈며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읽었다 가지 끝 매달린 실존(實存)은 불안하고 위태롭고 외로웠다

 

흔들리며 자라는 것들은 다 그 뒤에 든든한 벗바리가 있다 시골 집 뒤란 처마 같은 친구가 그렇고 등 뒤에서 꼭 껴안던 옛날이 그렇고 산골짜기를 숨 몰아쉬며 기어오르는 바람의 길이 그렇지만

 

아궁이 앞으로 나를 불러 스웨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원과 담뱃가루 묻은 눈깔사탕을 주던 외할매만 할까 입 속에 넣고 담뱃가루를 떼어내던 혀끝의 단맛만큼 달디단 침묵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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