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1
저 개울의 징검다리를 보렴 디디도록 제 몸 가장 낮게 낮추고 있잖니 물보다 더 낮게 뿌리 내리고 머리만 내밀고 있잖니 무뚝뚝해 보여도 짓밟히면서도 의연하게 즐거워하잖아 물의 흐름을 막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위하는 건 쉬운 게 아니지 그러고 보면 낮게 스며든 삶이 있어 저 건너 메밀꽃 보러 가던 저녁이 찾아왔던 거지
큰 물살이 몰려와도 휩쓸리지 않는 건 아주 더 깊게 내려앉았기 때문이지 때로 사는 건 견딜 수 없을 때라도 견뎌야 하는 것이어서 더 낮고 더 깊게 뿌리내린 마음이 있어야 하잖아 그게 믿음이어도 좋고 꿈이어도 좋고 신념이어도 좋지만 사랑이면 더할 나위가 없지
저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내가 디디며 건너는 디딤돌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과 닮았음을, 삶은 누군가의 눈물과 슬픔 위에 서 있음을 생각해보면,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낮게 스며들어 뿌린 내린 적이 없는 나는 징검다리 위에 소복하게 쌓인 흰 눈이 눈부셔 고개 숙이지 건너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그림자만 건네고 돌아서는 데 너도 이제 징검다리 되라고 개울 물 졸졸졸 흐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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