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조약돌

nongbu84 2018. 1. 21. 17:46


 

조약돌

 

솔잎처럼 가늘고 푸른 손등의 힘줄이 터지도록 오른 주머니 속에서 조약돌을 움켜쥐었습니다. 왼손으로 새끼손가락이 유난히 짧은 동생의 주먹을 감싸 쥐자 생손 앓듯 검지가 아려왔습니다. 맨 발로 신은 장화에 땀이 흥건하게 배여 왼쪽으로 쏠릴때마다 발가락으로 몰래 오므려 쥔 무서움이 삐져나왔습니다. 외할머니의 껄끄러운 스웨터에 얼굴 파묻은 저녁이 전나무 가지에 담배가루 묻은 별들을 걸어놓았지만 콧수염이 굵고 억센 아버지를 따라 가는 길은 깜깜하여 냇가의 물살이 자꾸 바위의 뺨을 후려갈기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곤하게 자던 냇가의 돌들이 모서리를 세워 홑이불처럼 펼친 물의 장막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둔덕의 전나무 생가지가 우지끈 부러졌습니다. 마음의 발톱이 뒤집혀 조약돌을 더 움켜쥘수록 날선 모서리가 손바닥을 자꾸 후벼 파 고구마같은 어린 시절을 캐냈습니다.

동생과 나는 냇가에 나가 자주 조약돌을 가지고 놀았지요. 아침 따뜻한 햇볕 아래 조약돌이 오줌 누는 소리를 엿 듣다가 물수제비를 뜨기도 했지요. 수면위로 건너뛰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피라미 비늘처럼 빛났고요. 냇가 풋사과 따먹고 배앓이를 하면 햇살 머금은 조약돌로 배를 문지르면 따뜻하였지요. 동생과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올 땐 조약돌 하나 쪼개어 나누고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지요.

군복바지를 입고 꿰인 주판알 같은 눈물로 위장한 상이군인 아버지를 따라 지팡이처럼 허리 굽은 노파가 운영하는 숲속 기지촌으로 팔려 가는 길, 무덤의 억새풀이 목발을 짚고 묶은 바람의 머리카락을 잘라 풀어헤쳤습니다. 그래도 동생과 나는 쪼개어 나눈 조약돌의 모서리를 맞추며 바람을 묶었습니다. 동생의 왼 새끼손가락으로 내 오른 새끼 손가락을 걸을 때 밤하늘의 달도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며 어깨동무하였습니다. 손톱마다 초승달이 박힌 동생은 반으로 쪼개진 조약돌을 지르밟혀 패인 곳에 몰래 놓았습니다. 이내 동생의 다섯 손가락 지문이 묻어난 조약돌은 주먹밥처럼 식어 꽁꽁 얼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 나도 손톱에 박힌 초승달처럼 하얀 조약돌을 내려놓았습니다. 내 마음의 손바닥이 새겨진 조약돌도 이내 놋주발처럼 차갑게 식어 성에꽃이 피어올랐습니다. 어둠 속 잠시 빛나던 조약돌은 돈 받아 돌아오던 아버지 군홧발에 밟혀 진흙 수렁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패인 발자국엔 사금파리로 그은 동생의 손목 피가 고여 가을마다 지폐 같은 감잎을 붉게붉게 적셨습니다. 그러면 기지촌 들머리 감나무는 조등 같은 붉은 감 하나 걸고 한 겨울 눈을 부릅뜨고 섰습니다.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접목(椄木)  (0) 2018.01.26
1. 짚신 한 켤레  (0) 2018.01.26
답장  (0) 2018.01.15
주산지 능수버들  (0) 2018.01.10
텃새  (0) 2018.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