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속 언치다

nongbu84 2018. 7. 11. 10:49



 

속 언치다

 

사흘 째 비가 내렸다 저녁 때 어미 소가 제 새끼 등을 혀로 싹싹 핥아주었다 사랑, 그게 특별할까마는 무언가 채워야할 빈칸 같은 거다

 

한 여자가 있었다 손바닥 지문이 사라진 여자, 손톱이 닳아 깎은 적이 없던 그녀는 뒤꼍에 오롯이 서 있는 탱자나무 가시를 하나 찢어 종기를 째고 그 속의 고름을 짜내는 손길이 매웠다 그 때 엷은 미소를 띠면 두꺼비처럼 눈두덩이 불룩했지만 찢어진 눈매가 날카로웠다

 

이삭이 잘 영글어 풍성하게 묶은 볏단 같은 허리를 졸라매고 갓 돋은 밭둑 풀들 사이에서 캔 달래를 넣어 된장찌개를 자주 끓였다 그녀는 아랫목에 한 사내를 위해 따뜻한 밥을 재워놓았다 제삿날 밤 고사리 숙주나물 산적 뒤섞어 먹고 체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등짝을 두드리고 어깨부터 팔까지 쓸어내린 다음 무명실로 엄지손가락 챙챙 감고 첫 마다 구부려 손톱 바로 밑을 콧김 세 번 쐰 바늘로 따 주었다 새까맣게 빨갛고 텁텁한 피 꽃망울처럼 솟아오를 때 두 엄지 모아 쥐어짜면 속이 후련하게 내려갔다

 

물러지지 않고 삭혀지지 않는 날이 어디 제삿날뿐일까 가슴 한 가운데 눌러 붙어, 내려가지도 않고, 더부룩하게 언친 인연은, 낡고 해져서, 허름하고, 너절해져도, 지울 수 없는 지문 같아서, 도통都統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데,

 

아흔의 한 여자, 그 손바닥으로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면 탱자나무 가시가 뺨을 찔러대다가도 그 손갈퀴로 등을 긁으면 왜 그리 시원한 슬픔은 쏟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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