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갈매기
1
항구의 낡은 따개비집들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 낮은 수평의 자리에 가파른 수직의 모텔이 들어섰다. 10층 아파트도 올라갔다. 좁고 가느다란 골목을 자벌레처럼 기어 다녔던 아이들과 굽은 골목의 벽에 훤히 드러나는 삶이 말끔하게 지워졌다 이 골목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경비업체에서 고용된 외지출신의 경비는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안개 속에서 등대 불빛을 따라 돌아오던 뱃사람 하나가 새로 지은 지하상가의 외진 계단에서 얼어갔다. 저체온증으로 폐에 쇼크가 왔다 앰뷸런스에 실린 사내는 구급대원이 묻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지 다섯 시간 만에 눈을 감았다. 심장이 얼어붙은 행려行旅의 사내는 손발이 파랗게 언 다른 行旅子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보았다 죽어도 누군가의 슬픔이 되지 못하는 죽음을 항구의 모텔과 노래방과 횟집과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았다
2
그 바닷가, 검은 갯벌에 페인트가 벗겨진 폐선弊船이 박혀 있었다 방파제를 따라 쪼그려 앉은 좌판에선 흥정하는 목소리가 사라졌다 수협에서 통장을 들고 나온 직후,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간 재술네 멍텅구리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어물전 차양막을 뚫고 솟은 받침대 꼬챙이에서 갈매기는 제 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해안선 눈부신 모래를 밟고 사라지던 달은 모래 사장에 죽은 갈매기 한 마리를 건져놓고 사라졌다 그 날도 바다에선 비릿하고 눅눅한 바람이 불고 여전히 보라색 도라지꽃 같은 파도가 일었다
나는 보았다 동사무소 담벼락을 타고 오른 능소화가 검붉은 혀를 잘라 뱉어내는 것을 대출은 상냥하고 다정했지만 제 집이 허물렸던 사내는 제 가슴까지 허물고, 살점을 넘기던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박혀 숨을 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