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국물
정조준하고 힘주어 오줌을 싸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걷어 찬다
움찔, 놀라 뒤를 보니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하여 멈칫,
녀석은 친구인줄 알고 장난치려다가 그만
한 생애의 마른 엉덩이를 걷어찼으니
서로 얼어붙은 듯 한참을 동작 멈춤,
앞만 집중하며 살다가
뒤를 방심한 나를 반성하며
오줌을 마저 누고 나오는 데
하늘에서 햅쌀 같은 싸락눈이 쏟아진다
생애의 긴 자루에는 화려한 수사만으로
채울 수 없고 가령 알곡 같은 사랑이든가
홑진 외로움이든가 아니면 정수리
뚫리는 지혜든가 하는 시원하고
담백한 것들로 채워야 했으니
누군가 걷어찬 저 하늘엔 이미
터질 듯 여물었던 뭇별들이 가득 차
밤새 눈은 은은하게 쏟아져 내리고
나는 동치미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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