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동치미 국물

nongbu84 2018. 12. 5. 11:47

 

동치미 국물

 

정조준하고 힘주어 오줌을 싸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걷어 찬다

움찔, 놀라 뒤를 보니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하여 멈칫,

녀석은 친구인줄 알고 장난치려다가 그만

한 생애의 마른 엉덩이를 걷어찼으니

 

서로 얼어붙은 듯 한참을 동작 멈춤,

 

앞만 집중하며 살다가

뒤를 방심한 나를 반성하며

오줌을 마저 누고 나오는 데

하늘에서 햅쌀 같은 싸락눈이 쏟아진다

 

생애의 긴 자루에는 화려한 수사만으로

채울 수 없고 가령 알곡 같은 사랑이든가

홑진 외로움이든가 아니면 정수리

뚫리는 지혜든가 하는 시원하고

담백한 것들로 채워야 했으니

 

누군가 걷어찬 저 하늘엔 이미

터질 듯 여물었던 뭇별들이 가득 차

밤새 눈은 은은하게 쏟아져 내리고

나는 동치미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의 방 한 칸  (0) 2018.12.12
역린逆鱗  (0) 2018.12.06
바로 지금 이 순간  (0) 2018.12.03
바로 여기 이곳에서  (0) 2018.12.03
그해 겨울 새벽  (0) 2018.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