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가만히
박 승 균
뒷모습에도 저마다의 표정이 있어요 양쪽 어깨는 이미 이력이 나서 뭉개진 계절의 끈이 박혀 있어요 오늘 길에서 당신의 뒤를 따르면서 휘청이던 한 집안의 가계도를 읽고 있 어요 떠도는 먼지가 햇빛을 받아 빛나지만 당신의 뒷모습 참, 공손하고 쓸쓸하지요 가난한 궁리를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졌지요 날개 꺾인 사람의 무덤을 자주 덮어주었으니 이제 봉분처럼 불거져 나온 뼈가 척추를 따라 남은 생을 간절 하게 버티고 있네요 그러고 보면 뒷모습은 수많은 갈래의 그늘을 적어놓고 있지요 둑처럼 무너져 굽은 허리 차마 읽지 못하고 눈길 사뭇 미끄러지는 저녁, 힘없이 흘러내린 당신의 그림자가 와서 어둑어둑, 남은 표정을 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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