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길 - 관람객 출입금지

nongbu84 2010. 2. 10. 11:53

산길을 흘러 넘어가는데 길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어느 곳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장마에 풀이 우거져 사람 다니던 길도 사라졌습니다. 겨우 길의 흔적을 찾아 길을 만들며 산길을 넘었습니다. 산을 넘고 나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지칠수록 몸과 마음에 버겁고 무거운 것들은 모두 버렸습니다. 그리운 사람하나만 가슴에 오롯하게 남았습니다. 흘러 넘는 이 힘든 길을 ‘그리운 사람’ 하나 만나려 걸은 것 같습니다.  

 

강가에서

이른 잠을 깨 서걱서걱 산굽이를 넘는

발걸음을 배웁니다.


강물소리를 들으면서

포도송이 같은 눈물을 떨구며

주먹밥처럼 언 가슴을 녹입니다.


강처럼 흘러갑니다.

밧줄을 매어 ‘줄 배’를 끌면서 건너 마을에 사는 한 사람에게 갑니다.


강처럼 흐르는 세월 속

나는 단풍나무처럼

얼굴 빨갛게 취기가 오른 가을이 됩니다.


강가에 다녀 온 뒤

산은 내 머리맡에 앉았다 쉬어가고

마음에 모과 향 가득한 가을을 남기며

강처럼 그리운 사람 하나 두고 갑니다.


강가를 다녀온 후 강은 내 마음 속에 다 채우지 못한 소주잔의 여백처럼 곱게 남았습니다. 나는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단풍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강을 생각합니다. 강에 다녀온 동안  골목길에 등 굽은 봉숭아꽃이 줄지어 피었습니다.


여름 밤 청어 떼처럼 몰려다니던 골목길, 그곳에서 강처럼 흐르는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 눈빛 한번에 단풍이 물들고 빨간 우체통은 편지를 주워 담았습니다. 손톱의 하얀 낮달도 봉숭아물들인 것처럼 붉어졌습니다. 골목길 어귀의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고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서점 문을 여닫을 때마다 솔깃 솔깃한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감나무에 몇 개 남은 감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며 걷고 있습니다. 골목길에 낙엽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길로 젊은 느티나무를 오르던 세월이 따라가고 마른버짐 같은 생활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나는 소주잔의 여백이 되고 얼굴 빨간 단풍이 되어 가을을 걷고 있습니다.


나는 흘러가면서 얼굴 빨간 단풍 같은 취기에 흔들리는 가을이 되고 있습니다 

 

 강은 왼쪽 어깨에 깎아지른 절벽을 둘러매고 흘렀습니다. 그 절벽을 붙들고 소나무가 매달려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가는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뒤척이며 절벽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어설픈 제방의 둑길은 강의 춤사위에 무너져 뭉개졌습니다. 


강가의 산모퉁이를 에돌아 가다보면 맞은 편 산자락에 빨간 라면 봉지 같은 집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과 맞은 편 마을을 이어주는 밧줄이 하나 매어져 있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어 갈 수 없는 길을 밧줄을 매어 배를 끌면서 서로 찾아갔습니다.


저 밧줄마저 끊어져 없어 졌다면........

넘실넘실 춤추는 강물이지만 인연을 끊는 잔혹한 춤사위입니다. 강의 넘실댐은 머리를 깎고 출가하던 날 떨어지는 머리카락처럼 춤추는 운율이지만 남은 자의 질긴 인연과 그리움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 밧줄은 강을 건너 바위를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건너 마을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달밤을 보냈으며, 건너 마을로 남 몰래 찾아들던 달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번 찾아간 사람의 품을 떠나 되돌아가고 싶지 않던 발길을 돌리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강물에 뿌렸을까? 주먹밥처럼 꽁꽁 언 가슴을 강물에 던지며 눈가에는 얼마나 살얼음이 서걱서걱 얼었을까?”


사람에게 가기 위해 강물줄기를 따라 흘러 흘러 세월을 걸어왔지만 아직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줄 배’ 한 척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언제쯤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줄 배’를 타고 줄을 당기며 휘영청 달 밝은 밤을 건널 수 있을까? 밤새 건너 날이 밝더라도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바닥이 까져도 당길 수 있는 줄만 있다면 낡은 뗏목으로 왜 줄 배하나 만들지 못할까?’


강줄기를 따라 험산준령을 넘기 전 집 한 채가 등불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그 집 평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는 장마에 젖은 집안 살림살이를 햇빛에 말렸습니다. 장판이며 부엌 살림살이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우리 삶도 땀에 젖은 살림살이처럼 여기저기 젖었습니다. 산중턱에 매달린 그 집에서 물을 얻어먹고 일어서려는데 할머니는


“ 맛있는 거 있으면 나누고 가는 거 아이래, 쉬었다가 그냥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마당 그늘 값은 나누어야 하는 거래. 뭔 사람들이 그래?”


마당을 나누어 받았으면 우리도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습니다.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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