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땀으로 영그는 알맹이
1. 너희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어머니의 편지에 감사를 느끼며 진로문제로 고민했지만 학급 까페를 만든 강일아!
동생 서연이를 돌보고 “아빠 엄마 사랑해여!”를 마음속에 담고 있는 대호야!
부모님의 싸우는 모습에 가슴아파하면서 마을버스문제로 고생 많았던 회엽아!
정동진 도보의 경험을 쌓고 요리사가 되고자 꿈을 가꾸는 관중아!
11시에 집에 오시는 어머니를 걱정하며 계란에서 병아리가 되고자 애썼던 남원아!
할머니를 보살피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늘 축구를 열심히 했던 도현아!
컴퓨터에 빠진 자신을 질책하면서도 농구대회에서 투혼을 발휘했던 재형아!
컴퓨터 오락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진로에 고민했던 진호야!
아버지는 택시 일로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로 혼자서 식사 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아파하고 있는 창수야!
허리가 안 좋은 어머니와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속 에서 마음을 가꾸는 형걸아! 교회 갔다가 늦게 온다고 야단치는 어머님께 이해를 요청하였던 석모야!
힘든 아빠에게 말대꾸하고 어머니와 잦은 말다툼을 하면서 혼자 아파했던 성후야!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진로문제로 고민했던 주형아!
온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나누기를 바라는 찬우야!
1년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썼던 철웅아!
용돈의 인상을 요구하면서도 아버지의 눈물에 마음 아팠던 요엘아!
미술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면서 문집 표지그림을 그린 귀섭아!
어머니가 아플 때마다 마음으로 우는 신선아!
저녁에도 일하시는 부모님을 걱정하면서 늘 올곧은 소리를 하는 현식아!
수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진영아!
멕시코로 유학 갔다가 엊그제 학교를 방문한 휘석아!
성적 올리라는 이야기에 마음 아파하는 상운아!
종교문제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는 기호야!
4과목 석권을 하는 의젓함도 있지만 아직은 힘들 때 짜증부리는 모습도 지닌 동현아! 정동진을 걸으면서 가슴에 뜻을 품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성국아!
태권도를 열심히 하여 이다음에 교사를 꿈꾸는 의종아!
선도활동으로 1년 내내 수고하며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정건아!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해본 경험으로 부모님의 소중함을 이미 알고 있는 종훈아!
아버지와 둘이 생활하면서도 밝게 생활했던 하늘아!
말썽부리는 자신에 대한 미움을 지니고 있는 성수야!
가난을 극복하려 애쓰셨던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기창아!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려 애쓰면서도 농구대회에서 열심히 한 종하야!
휴일에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들었던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이제는 이해하는 무엽아! 무서우신 아버지와 다리가 안 좋으신 어머니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우형아!
2학기 들어 무척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바뀐 병일아!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재미있고 비평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잘 쓰는 성욱아!
선생님과 함께 무사히 정동진 일출을 향한 도보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태환아!
사춘기 소년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한해를 보낸 후락아!
다리가 부러지고 다시 금이 가고 친구등에 업혀가고 했지만 너무나도 바뀐 생활을 했던 우일아! 그리고 직업반 동준아!
너희들의 이름을 내가 기억함은 너희들이 이미 내 마음에 아주 의미 있는 사람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란다. 그냥 지나치는 행인이 아니라 너희들의 행복한 삶을 늘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으로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내게 삶의 이유가 되고 너희들로 인해 내 삶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단다.
2.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
어느 날 밤늦은 새벽 혼자 터벅터벅 걸어 골목길로 접어들면 오직 내 발자욱 소리만이 들립니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바늘 침처럼 다가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를 "반성"이라 합니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면서 거울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다듬고 옷맵시를 단정하게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반성의 행위에 해당합니다. 거울이 없었던 옛날 사람들도 물을 떠놓고 자신의 용모를 비추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반성 중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행동에 자신의 삶과 생각과 행동을 비추어 보았던 반성"은 너무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물에 자신을 비추어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 속에 자기를 비추는 일은 자신의 외모만을 가꾸는 데 열심인 현대에는 더욱 필요한 일입니다. 다이어트라는 신흥종교(?)가 생겨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의 마음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반성의 과정중에 자기를 되돌아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움켜쥐고 낱낱이 살펴보고 옳은 삶이 무엇인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를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냥 저냥도 살아갈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아름다움, 훌륭함등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 중 최고의 가치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선하고 가장 아름다운 진, 선, 미의 가치들입니다. 오늘 밤 내 삶이 훌륭해지고 아름다워 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이 우주 안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존재하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책상을 쓰다가 고장나면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되고 연필은 부러지면 새로 깎아 쓰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 자신은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대체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귀중한 존재입니다. 또한 나는 단 한번뿐인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두번의 기회가 아닙니다. 오직 단 한번의 기회로 주어질 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내 삶에서 다시 반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살수도 없습니다. 반복이 없고 같은 경험이 두 번 지속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내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나는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도 있고 그 누군가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면 내 자신의 어머니의 기대이고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나로 인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늘 어머니의 얼굴 표정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나로 인해 더욱 환한 웃음으로 바뀔 수 있는 나의 삶을 드리십시오. 손잡아 보면서 발을 닦아 드리는 우리 반 친구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3.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한 예의를 갖추십시오
<하 나>. 나침반은 북극점을 가리키며 바늘 끝을 가늘게 떨고 있을 때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침반의 바늘 끝이 흔들리지 않고 정지해 있다면 고장난 장난감일 뿐 자기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키는 일을 삶의 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침반은 늘 파르르 떨고 있는 얼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깃발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흔들리고 있을 때 자기의 존재를 이 세상에 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깃발이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내어 흔들리지 못한다면 헝겊의 나풀거림일 뿐 자기의 존재 기반을 상실한 것입니다. 깃발은 가슴 벅찬 소망으로 존재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함성으로 흔들리는 것을 삶의 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깃발은 온 몸을 흔드는 몸짓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발라줌으로써 삶의 가치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만일 향나무가 나무를 찍는 도끼자루가 된다면 그것은 부지깽이로도 쓸 수 없는 삭정이 일뿐 용서를 가르치는 향나무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향나무는 상처의 아픔으로 엮은 용서를 가지고 죽은 영혼을 달래는 향불로 거듭 태어날 자격을 지니는 것입니다. 파도는 긴 호흡으로 들이마시고 한 숨에 몰아 토해내는 충격으로 태어남으로써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날 줄 압니다. 파도는 먼저 바닷가의 돌들을 반듯하게 고르는 일로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낮은 곳을 찾아 흘러흘러 들어드는 일로 삶의 맥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파도가 존재의 근원을 찾아 아래로 떠날 수 있는 파장이 되지 못한다면 파도는 그저 물거품일 뿐 거센 에너지가 되고 힘줄 튀어 오르는 변화의 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파도는 충격과 파장으로 돌에 온 몸을 부딪치는 모험으로 살아가기를 좋아합니다.
<두 울>. 개구리는 논둑에서 밤새워 울 때 사랑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눈이 튀어나오도록 목젖에 피가 나도록 울부짖을 때 사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구리가 울지 않는다면 아무리 봄이 오더라도 가슴 저린 사랑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개구리는 울음으로 존재의 업보를 달래고 있습니다.
새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할 때 새가 될 수 있습니다. 날기를 그치고 언덕에 앉거나 배부름에 취해 졸고 있을 때 새는 날개를 잃은 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벌레는 나뭇잎을 갉아먹고 편안히 잠자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나비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지닐 때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은 애벌레이기를 포기할 만큼 간절해야 합니다.
<세 엣>. 사람은 떨림, 흔들림, 되갚음, 흐름으로 살아있음을 증거합니다. 떨림은 사명을 완수하려는 몸짓이며 흔들림은 소망을 이루려는 치열함이며 되갚음은 좋은 일을 이루다가 얻는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치료약이며 흐름은 존재의 시작을 지속해 나가는 처절함입니다. 분명히 삶에는 세속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존재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모습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다만 그 모습 속에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모양만은 닮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영역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우주를 모두 살아갈 수 없으며 영원한 시간을 통해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은 자신이 살 수 있는 영역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여 사는 일이며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에서 가치 있는 것에 정성을 들이는 양을 많이 확보하여 사는 일 일 뿐입니다. 존재함에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한정된 시간과 영역을 살다보면 돈의 많고 적음에 현혹되기 쉽고 지위의 높고 낮음에 유혹되기 쉽고 명예의 넓고 좁음에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속적인 성공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존재함에는 편안, 편리, 빠름보다 더 가치 있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어떤 모양의 세상살이라도 그저 살 수 없으며 쉽고 편안하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더욱이 "가치 있는 삶"은 어렵고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불구불한 나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가 태어난 환경과 딛고 서있는 땅과 처한 위치에서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자랍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굽을 뿐 결코 꺾이는 법이 없습니다. 길게 누워 뻗은 좁은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넓은 그늘로 사람살이의 쉼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구불구불 성장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을 품고 가꾸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4. 개미와 베짱이를 다시 노래함
아이들이 즐겨 읽는 이솝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아주 짧은 혀를 낼름 내미듯 싹을 틔우는 봄에도 개미는 일을 하였다. 임산부의 뱃살이 터지듯 팽창의 포만감에 휩싸인 여름에도 개미는 먹이를 온종일 모으고 있었다. 가을, 삶의 무게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찬바람 한 조각으로도 충분히 떨어지는 가을에도 개미들은 줄지어 입에 물고 날랐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개미들은 그 동안 모아두었던 먹이를 먹이며 낮잠을 즐기며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나태와 한가한 시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개미들은 사는 의미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 기나긴 겨움 밤과 아무 할 일 없는 낮의 시간이 무료하고 따분하기만 하였다. 견딜 수가 없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또 힘겨운 노동의 계절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할 때면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개미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다. 재미나고 즐거운 일이 없을까 고성이 오가고 손가락질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그들은 언젠가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 밑에서 노래를 부르며 삶을 음미하던 베짱이를 본 일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베짱이는 필요한 만큼의 먹이는 스스로 찾아 먹을 줄 알고 있었고 삶의 전부를 옭아맬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꼭 필요한 만큼만 하였다. 그 노동의 시간이 지나면 그는 자주 노래를 부르고 삶을 의미하는 재미를 느꼈다. 봄에는 얼었던 냇물의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를 따라 따스한 햇살아래 꼬박 꼬박 졸며 지난 겨울 떠난 애인 얼굴을 땅바닥에 그리며 그리움을 느꼈다. 여름에는 발이 푹푹 빠져 먼지투성이가 일어날 정도의 가문 밭에 물을 주며 그 가문 땅에서 싹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성장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알 익는 빛깔을 미치도록 사모하였다. 겨울에도 베짱이는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봄에 겪었던 따스한 햇살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음미하였고 여름에 스스로 만들었던 노동의 뒷이야기와 시름을 끄집어내어 달랠 수 있었고 가을에 책갈피에 꽂아두었던 단풍잎들을 바라보며 그 무늬 무늬진 상처와 삶의 빛깔과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베짱이에게는 부를 노래가 얼마든지 있었고 긴 겨울밤을 세워 해줄 이야기가 가슴 가득 들어있었다. 베짱이에게는 춥고 검은 어둔 동굴에서도 견딜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갖고 있었다.
어릴적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면서 우리는 부지런한 개미상을 이미지업시키며 근면성실절약 정직한 인간이 되는 다짐을 반복하고, 게으른 베짱이를 욕하면서 삶의 여유와 마음의 풍요로움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쏟아지는 시대에 이제는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노동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개미와 삶의 향기와 온기를 지닌 채 삶을 음미하는 베짱이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온 일생의 시간과 정성과 땀을 다해 가꾸어온 도시와 건물과 공장과 상품이 이제는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다 못해 인간의 마음까지도 갉아먹고 있다. 사나워질대로 사나워진 인심과 오직 일밖에 모르는 기계로 전락한 채 이제는 습성처럼 아침이면 일터로 향한다. 무조건 부지런하고 절약하고 풍요로워질 마음의 가능성을 잃어버린 채 또다시 일하고 일한다. 이제는 삶을 즐길 필요가 있다. 더 풍요로워질 필요가 있다. 마음을 나누고 고단한 삶을 달래고 서로 어깨 걸으면서 말동무하고 걸어간 길을 되돌아보며 음미하고 어디를 향하여 걷고 있는지 반성하고 검토하는 시간의 여유를 지녀야 한다. 노래하는 베짱이의 여유 따뜻한 햇살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사는 베짱이의 마음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 걸음을 멈추고 울컥 울어보았을 베짱이의 상상력을 닮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개미의 유난스런 부지런과 개같은 성실성으로 일구어 놓은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편리 때문에 너무도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인간성이 고갈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마른 장작처럼 바짝 말라버린 마음에 이제는 불을 붙여 그 장작더미를 바라볼 시간을 만들 때가 되었다. 속도와 경쟁, 빠르기와 앞섬, 새로운 것과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최선의 가치를 지니는 시대에 이제는 달리던 차에서 내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바라볼 때가 되었다.
5.그림자 밟기 놀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그는 내 주위를 맴돌며 내 주변에서 서성거리다 숨는다. 꼭 꼭 밟아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그는 아무리 밟아도 결국은 말밑에서 빠져나간다. 그는 내가 햇볕이나 불빛, 별빛이나 등빛에 등을 돌리고 서면 내 앞에 나타난다. 그는 내가 햇볕이니 달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내 등뒤에 숨는다. 그는 내가 그 빛에서 멀어져 있을 수록 자신의 키를 길게 늘어뜨린다. 달빛에서 멀어져 등돌리고 아주 멀리 떠나갈 때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이 되고 달에서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때 어마어마한 크기로 내 등뒤의 사물을 덮는다. 그가 내 발 밑에 꼭꼭 밟혀 있을 때는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빛이 비치고 있을 때뿐이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내가 조금만 흔들려도 그는 발밑에서 빠져나와 내 모양을 닮은 모습을 나타낸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밟으려 뛰어다닌다. 휘휘돌며 제 그림자는 밟히지 않고 다른 사람 그림자는 꼭 꼭 밟으려 밤새 달빛에서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친구들의 그림자는 꼭꼭 밟아주어야 한다는 것을...........자신의 그림자는 다른 사람만이 밟을 수 있다는 것을..............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제 몸에 숨기고 대신 제 그림자를 세상에 길게 늘어뜨리는 놀이를.............그들이 제 그림자에 눈을 뜰 때면 이미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밟아줄 친구들이 먼 세월 속으로 떠나갈 것이다. 어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그림자 밟기 놀이를 즐기지 않는다. 어른들은 제 그림자를 발 밑에 밟고 있으려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나는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모습은 내 발끝에 이어 붙이며 내 앞에 내 옆에 내 뒤에 길게 혹은 뚱뚱하게 나뭇가지처럼 혹은 이상한 나라의 거인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고자 애써온 세월은 겪어오기도 했다. 그를 모른 체 하기도 했고 그에게서 멀리 도망치고자 잠깐 등돌리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를 발 밑에 숨겨놓고 그를 꼭꼭 밟아 힘을 쓰지 못하게 가두었다고 착각하기도 했으며 그가 없어졌다고 기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잠시 사라졌을 뿐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현현 시켰다. 오히려 그는 내 눈에 나타났고 내 마음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나를 자주 유혹했고 나를 자주 꾀어내어 나를 어지럼증이 날 정도로 손에 잡힐 듯 손에 잡힐 듯 잡힐만하면 사라지고 잡힐만하면 도망치고 나는 그의 포로처럼 끌려 다녔다. 내가 그를 데리고 다닌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끌고 다닌 것이었다. 그는 허망한 집착이었다.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욱 빠져드는 늪처럼 나를 계속 옭아맸다. 지금 나는 내 그림자를 밟아줄 친구들이 떠나간 세월에 살고 있다. 설령 그런 친구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그들이 내 그림자를 꼭꼭 밟아 줄 수가 없음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 발 밑에 그림자를 숨겨놓고 없어졌다고 착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림자가 존재하는 한 그림자 밟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다만 그림자가 가장 작아지고 내 발 밑에 꼭 꼭 누르고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내가 걸어가더라도 내 발 밑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그림자가 내 발 밑에 꼭꼭 달라붙어 다니도록 빛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허망한 그림자는 강렬한 빛으로만 다스릴 수 있다. 밟아도 밟아도 도망치기 일쑤인 그림자는 내 힘이 아니라 진리가 내 안에 스며들었을 때만 가두어 둘 수가 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내 몸으로 받아주고 대신 내 그림자를 다른 사람이 받아주고 다른 사람의 그림자는 또 다른 사람이 받아주고.......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받아주는 일이다. 살면서 겪는 허망한 집착이 나를 떠나 다른 사람으로 가면 사랑이 되는 법이다. 마음이 자기가 기거할 집을 떠나면 허허로운 바람이 되기도 하고 세상을 등진 그림자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찾아가 다시 기거할 집을 만나면 따뜻한 온기가 된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그 아이들의 그림자를 받아내는 몸과 마음이 되고, 내가 그 아이들의 그림자를 다시 되돌려 보내주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내게 보낼 때 나는 그 아이들의 그림자를 밟아주려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에 아이들의 그림자를 그대로 비추어주어서 그 아이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그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서 다시 빛을 반사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들의 그림자를 사라지도록 돕고 결국은 그림자를 꼭꼭 밟은 아이들을 통해 내 그림자가 사라지도록 하는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꼭꼭 밟고 서서 세상을 살수 있도록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6. 둥근 해가 떴습니다.
어둠이 사브작 사브작 도망가며 뒷단을 걷어올릴 때나는 학교로 출근합니다. 이사온 후로 학교 뒷산을 넘어 옵니다. 아침에 걷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낙엽이 떨어져서 이제는 몇 장 지폐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아침 바람이 불면 문풍지 울듯 후툭 후툭 소리를 내며 반깁니다.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른 3층 교무실에 도착하여 커텐을 걷어올리고 도망치듯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안개의 모습을 보고 먼 산 위로 솟구쳐 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둥근 해가 정말 떠오릅니다. 이제는 그 해를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둥근 해를 바라보면 마음까지 얼얼해지고 나에게 또 하루의 선물을 만들어봅니다. 매일 아침 이렇게 학교 교무실에도 둥근 해가 뜨고 있습니다. 서둘러 일과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생각합니다. 금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교무실에 앉아 바라보는 해는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너무 힘들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교무수첩을 들고 교실로 올라갑니다. 아침 해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바라보는 것이 제격입니다. 아이들은 해를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등뒤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늘 아이들에게 해가 떠오르지만 아이들은 고개 숙여 졸고 있거나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교실 창문을 통해 아침해를 바라봅니다. 흥건하게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칠판이 달아오르고 내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이 부셔옵니다. 매일 아침 둥근해가 떠오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떠오르는 진리를 확인하였습니다. 아침해는 늘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 떠오른 해를 보면서 아이들의 삶에도 내 삶에도 둥근 해가 떠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고 희망을 만들 수 있으며 내가 내 삶에 온 정성을 쏟아 붓고 희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침해를 등뒤에 엎고 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아픔이 먼저 보입니다. 어찌보면 희망이란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그들 곁으로 다가서는 일인 듯합니다. 아침해를 보지 못하고 뒤늦게 오는 교사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굳어진 습관 같은 하루 일과를 봅니다. 어찌보면 희망이란 사람의 타성을 보면서 그 타성 속의 열망을 캐어내는 일인 듯 합니다.
희망의 아침해는 먼저 사람의 아픔을 보고 함께 겪으면서 사람 곁으로 다가가 마음의 길을 트는 일인 듯 합니다. 먼저 사람의 열망을 알고 그 열망을 표출하도록 말 길을 트는 일인 듯 싶습니다.
7. 알땀으로 걸었던 정동진 여행 :"뒤에 오는 아이들에게 "
늘 나는 그들에게 하나의 배경이 될 뿐이고 조연자일 뿐이다.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대일 뿐이고 내 뒷모습은 딛고 가야할 계기일 분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동행, 함께 걷는 것, 그러면서 같은 바라보며 걷는 것.......동행하는 이의 걸음을 내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 스스로 걸어야 할 뿐이다. 함께 걸으면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나타내며, 어깨동무할 수 있을 뿐이다. 걷는 일이 하루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그래서 함께 갈 수 있으려면 아주 오랫동안의 관심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그들이 자기의 삶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면....교사의 일은 필요 없었으리라. 나의 삶은 끊임없이 그 누군가의 애정과 인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누군가의 삶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나는 아이들을 내 안에서 자유롭게 키우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어 내가 자유로워지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삶의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는 그 일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 세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길.........마음껏 마음의 길을 갈 수 있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고 마음껏 잘 할 수 있는 일이 가치 있도록 그들에게 자유를 가르치고 싶다.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 어미 새가 혹독한 시련을 시켜 자기 새끼를 세상에 날려보내듯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기 삶을 정말 사랑하고 자기 삶에 정성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로 날려보내고 싶다. 나는 아이들에게 과제를 이런 과제를 내주고 싶다.
우선은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실천에 옮길 것"이란 숙제를 내주고 싶다.
(1)도움주기: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아주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주 큰 도움을 주고, 도움 받은 사람은 다시 3사람에게 받은 만큼 다시 되 갚는 일을 하는 숙제를 내주고 싶다. 두 번 째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장문의 편지 쓰기"를 내주 고 싶다.
(2)희망나누기: 우선 한 장 은 2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것이고 또 한 장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의 정성과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보내야 한다.
(3)마음 관찰 일기 쓰기: 화난 마음과 화나기 이전의 마음을 서로 비교하고 화나기 이전의 마음이 본래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깨닫도록 하는 마음을 관찰하는 일기 쓰기를 내고 싶다.
다음은 " 자기 인생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길 것"이란 숙제를 내주고 싶다. 지금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듯, 어린 시절을 유예하고 싶어하지만 어차피 자기 인생의 길과 정면으로 맞설텐데 그들이 끌려가는 자기 인생을 변화시킬 방법을 생각해내고 실천했으면 한다.
(1)부모님 손 잡아보고 발 닦아드리기: 내 인생의 시작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되니까 부모님의 손발을 잡고 닦는 일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얼굴표정에 내 삶을 비추어보는 일이다. 부모님의 얼굴표정만큼 내 삶을 비추어주는 정직한 거울은 없는 법이다.
(2)미리 자서전 써보기: 자신의 걸어왔던 길을 정리해 본다.
(3)내 마음의 흐름을 살펴보고 "마음의 길"을 따라가기: 내 마음은 곡식과 잡초가 자라는 밭과 같으니 잘 살펴 곡식은 기르고 잡초는 뽑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나는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그저 하나의 반면교사요, 딛고 가야할 장애물이다. 그들의 배경이고 그들의 무대이고 그들의 조연자일 뿐이다. 그들이 관심을 나누며 자기 인생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8. 함께 땀흘리며 함께 걷는 동행 친구들
길을 걸으면서 한번쯤은 동행할 친구가 있어도 좋다.
하나. 관계맺음은 여우와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 작전>을 의미했다.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그냥 스쳐지나 가는 관계가 아니라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빛깔을 닮은 밭으로 변화되고 발걸음이 그냥 소리가 아니라 꼭 그이의 발걸음이 되고 수많은 여우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된다. 마음을 길들이고 감정을 길들이고...........
두울. 관계맺음은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일>이다. 구두와 발이 서로에게 가장 편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발의 뒷 굼치가 까지는 아픔과 신발이 닳아 없어지는 양보로 가능했다. 서로를 아픔과 양보로 확장하는 일이다. 마음을 확장하고 감정을 화장하고........
세엣. 관계맺음은 이름 없는 사물에게 하나밖에 없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더 이상 꽃이 아니라 의미가 되었다. 표정하나가 의미가 되고, 눈빛하나가 의미가 되는 일이다. 마음의 징표가 의미로 태어나고..............
네엣. 관계맺음은 <입장의 동일함>을 만드는 일이다. 공유가 아닌 같음의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관찰, 사색, 생각보다는 정성을 표현하고 정성의 표현보다는 손발을 맞추고손발 보다는 서있는 처지와 마당을 함께 엮어내는 일이다. 처지와 걷는 걸음을 함께 맞추며...........
다섯. 관계맺음은 <마음의 무늬를 새기고 지우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저 걸음의 흔적으로 남는 일 일뿐이다. 마음에 도장을 새기듯, 그렇게 그렇게 무늬를 만들며 아주 오랜 세월 세월조차 그 흔적을 잊을 때쯤 먼지 털어 내며 다시 보는 무늬로 남는 일이다.
무늬를 마음에 새기며 그 무늬를 세월로 지워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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