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서리

nongbu84 2017. 11. 30. 10:59

 

 

서리

 

맑은 늦가을 찬 아침, 토실토실한 햇살을 까먹는 게 좋았다 반성 없이 자란 여름을 다독이는 건 내 가문의 오랜 전통이라 밤마다 밭에 내려앉아 낮게 스며들었으니 靑靑한 고춧잎이며 무 잎이 맵찬 성깔을 죽이고 잠잠해졌던 거다 채소밭에 앉아 가만히 숨죽이고 귀 기울이면 봄동의 뿌리가 더 실하게 굵어져 고소하게 익는 소리가 들렸으니

 

손발이 차가워진 달, 산 넘어 오시는 밤 자작나무가지에 싸락싸락 흩뿌린 눈꽃으로 환하게 길 밝혀 기다리다가, 창문에 한참을 기대어 뺨 부비는 당신을 위해 밤하늘의 찬별들 다 품은 성에꽃을 피우고 방구들 이불에 당신 손 덥히는 동안 길 건너 연못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얼음 꽃 하나 피우다가 아침에 사정없이 죽어도 좋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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