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술 주전자
노란 주전자 뚜껑 덜커덩덜커덩
술심부름 하러 양조장 가는 길
냇가 살얼음 고양이 눈처럼 빛나고
도랑 흐르는 물소리 꼬로록 배고파우네
양은 주전자 막걸리 넘칠 듯 찰랑찰랑
주둥이 대고 찔끔 찔끔 마시다가
비척비척 질퍽한 마당 들어서는데
내 풀린 신발 끈 내 스스로 밟고
내 왼 발목 내 스스로 걸어 그만,
그만 미끄러져 철퍼덕 엎어졌네
조그만 돌부리 탓할 수도 없이
주전자 뚜껑 댓돌로 날아가 부딪치고
반쯤 남은 막걸리 마당에 옴팡 쏟았네
겨우 일어서 손바닥 붙은 흙부비다가
무릎에 엉겨 붙은 진흙 털어내다가
내 넘어진 곳에 찍힌 손바닥과
패여 짓이겨진 무릎 자국을 보았네
내가 딛고 일어선, 그 넘어진 곳
응달이 잽싸게 달아나고
햇볕이 재빨리 파고들어
자리바꿈 하는 건 한 순간이었네
자주 무릎이 아픈 건 제 스스로
넘어진 곳을 딛고 일어선 역사의
지병(持病)같은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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