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좋은 비가 때를 맞추어 밭을 촉촉하게 적시면
듬성듬성 심은 생강은 촘촘하게 자라기에 좋았다
마음은 제 몸 어디로든 삐져나오는 것이어서
눈물은 슬픔이 삐져나온 것임을 알지만
자꾸 제 안으로 잡아끄는 힘줄도 있어
서러움을 터뜨리지 못하고 오므린
생강은 울퉁불퉁하게 주먹을 쥐고
숨 쉬는 적요의 땅, 그 속에서 생손 앓으며
잎처럼 무성해지는 욕심 잘라내고
제 속 매콤하고 톡 쏘며 향긋한 향을 자아내는 일은
노란 주전자의 운명처럼 슬픈 이들의 몫이어서
사기 등잔의 심지처럼 제 몸 제 마음 스스로 덥혀
웅크린 용의 머리에 역린 같은 새싹 하나 틔우려면
땅속 어둠의 역사도 덖어야 했다
사월 아침 내리는 봄비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흥건하게 젖은 밭에서 슬픈 것 따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꽉 채운 생강처럼
나의 사랑은 아픈 손가락을 꼭 움켜쥐고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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