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저수지 가만히 누운 몸에서 누룩 냄새가 나고 솔 향으로 질펀하게 불은 송편냄새가 코끝을 홀쳐맨다. 버드나무 한 그루 배꼽처럼 터 올라 소란(騷亂)의 탯줄을 잘라 매듭짓고 있다. 그 모양이 꼭 담뱃가루 묻은 왕 눈깔사탕을 꺼내던 외할머니 스웨터 주머니처럼 기운 자국 선연하다. 밥 .. 牛步萬里-나의 삶 2013.03.03
보내는 이를 위한 작은 노래-가방을 싸며 보내는 이를 위한 작은 노래 .......가방을 싸며 떠나는 사람을 위해 가방을 싼다 다림질한 옷가지 몇 벌 줄무늬 양말 여섯 켤레 삶아 빤 속옷..... 차곡차곡 가지런히 포개어 접는데 다림질한 마음이 구겨진다 몇 번을 손으로 훑어 개키지만 자꾸 접혀 더 넣을 것이 없는가 옷 모서리 끝은 .. 牛步萬里-나의 삶 2013.02.17
자화상(自畵像)-슬픔의 전령 자화상(自畵像) 눈이 모든 길을 덮은 밤, 찬별만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아는 듯 밤새 부고장을 보낸다. 집집마다 죽음이 찾아오고, 헛간 멍석으로 무겁게 매달린 침묵.....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의 생애, 그 뒤척임조차 사치스런, 눈 내린 밤이다. 아버지는 부고장(訃告.. 牛步萬里-나의 삶 2013.02.02
삶의 음보, 혹은 도보 걷는다는 것과 삶 사람은 앉아 먼 곳을 보며 몽상에 잠기려 태어난 것은 아니다. 삶의 길을 걸어가려고 태어났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이고 나는.. 牛步萬里-나의 삶 2013.01.31
삶의 바다, 그 낮고 고난하고 높은 항해 삶의 바다, 그 낮고 고난하고 높은 항해 사람은 앉아 먼 곳을 보며 몽상에 잠기려 태어난 것은 아니다. 삶의 길을 걸어가려고 태어났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내 뒤를 .. 牛步萬里-나의 삶 2012.09.17
나는 네게서 보았다. 외롭고 쓸쓸하지만 높은 또 하나의 삶을.... 나는 네게서 보았다. 외롭고 쓸쓸하지만 높은 또 하나의 삶을 어느 날 나는 네게서 눈처럼 쉽게 녹을 영광을 보았다. 나는 걱정했다. 어느 날 나는 네게서 품삯도 되지 않는 한숨을 보았다. 나는 걱정했다. 어느 날 나는 네게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욕심을 보았다. 나는 걱정했다. 오랫동.. 牛步萬里-나의 삶 2012.09.17
외딴 집 외딴집 청솔 타는 매운 인연 사라진 지 오래, 만월(滿月)을 누가 밟고 떠났을까 한 쪽 귀퉁이에 발자국만 남아 지붕 위 박꽃은 서럽도록 하얗다 텁텁한 밑술에 취한 달빛은 흰 사금파리에 베였는지 자꾸 비척거리며 흔들린다 만삭(滿朔)의 솔숲에서 삭정이 부러진 밤 바람이 물고온 소문.. 牛步萬里-나의 삶 2012.03.23
시절인연(時節因緣)의 소리 2 시절인연(時節因緣)의 소리 2 내 얘기 잠깐 들어봐 모두가 고개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빈 틈 빈 항아리, 햇살마저 졸고 있는 뒤란에 잠시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게 우리 사는 거잖아 아이들은 소풍을 다닐 테고 어른들은 술집을 다닐 테고 소풍가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집에.. 牛步萬里-나의 삶 2012.01.25
명성산의 갈대-가을 , 혹은 더 낮고 더 느리게 가을, 혹은 더 낮고 더 느리게 <가을, 혹은 더 낮고 더 느리게> 여름 볕은 들판을 분주하게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성찰 없이 뛰어 논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비를 피해 나무 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게 하필 모과나무였습니다. 모과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참 향기롭습니다. .. 牛步萬里-나의 삶 2011.11.30
강릉 선교장 : 솔숲에 살고 싶은 꿈 솔숲 등굽은 어미는 송홧가루 분으로 주름진 얼굴을 메웠다. 바람불면 분칠한 얼굴의 주름이 깊은 고랑을 만들며 드러났다. 동네 아낙들은 서로 등을 부비며 아픈 상처만을 만들었다. 휘영청 머리위에 걸린 달빛만이 등굽은 어미의 눈물을 감추어주었다. 어미는 늘 둘러댔다. 바람불어 흔들리며 수북.. 牛步萬里-나의 삶 2011.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