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 -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 - 겨울에 철사를 만지다 버드나무는 겨울에도 이기적이지 않았다 대출받았던 푸른 잎들 다 갚고 제 안에 나이테를 겹겹이 둘러쳐 울타리를 세우고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속의 가장 중심에선 또 한 번의 반란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철책을 지탱하느라 묶어 놓은 철사 오.. 閼雲曲 -시 2018.11.26
담쟁이 넝쿨 담쟁이 넝쿨 – 사랑 온 담장을 덮으려고 넝쿨 쭉쭉 뻗으며 입술 같은 잎 찬란하게 피운 담쟁이, 층층으로 쌓인 담을 기어코 다 품겠다고 당차게 날름거리더니 그만 청태靑苔 낀 돌멩이 하나 품에 안지 못하고, 붉은 혓바닥 잘려 말라가네 사랑이란 그런 것 아니었던가 다 품었다 싶다가.. 閼雲曲 -시 2018.11.19
얼음새꽃 얼음새꽃 동네 사람들은 불친절하다는 마을 사격장에 모여 활이나 총으로 닭이나 개를 잡기도 하였지만, 소년은 들판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새총으로 나무에 기댄 소녀의 머리 위에 올려진 깡통을 겨냥하였습니다. 팽팽한 사선射線에서 멈춘 달빛의 숨소리, 총알은 목표물을 향해 발사하.. 閼雲曲 -시 2018.11.13
동백꽃 동백꽃 볼 빨간 소녀의 머리 위에 깡통이 올려져있고, 코밑 솜털 거뭇한 소년은 제 손으로 만든 나무총으로 목표물을 겨냥하였습니다 사선射線의 팽팽한 전율, 소년이 목표물을 정조준하여 총알을 발사했지만 딴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곳은 소녀의 눈동자였습니다 봄볕이 화살촉처럼 .. 閼雲曲 -시 2018.11.12
나이테 나이테 눈 덮인 강둑을 따라 산에 오르면 잘려나간 나무만이 흰 눈 속에서 둥글고 검은 나이테를 드러냈다 햇볕에 얼굴만 내민 밑둥치의 잘 영근 문양들, 그 과녁 속으로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햇볕과 솔잎의 눈빛들 빨려 들어오는 산새와 바람의 울음들 마냥 부풀대로 부풀었던 나이.. 閼雲曲 -시 2018.11.12
과녁 과녁 나는 이 세상의 과녁이었다 가난이라는 세상의 지분을 가지고 아들이라는 아버지라는 친구라는 동료라는 동지라는 이름으로 활줄에서 켕긴 화살은 나를 팽팽하게 정조준하였다 生의 거친 사냥터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 같았다 나를 향해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무사하게 잘 .. 閼雲曲 -시 2018.11.09
버팀의 미학 - 느티나무 버팀의 미학 - 느티나무 나이가 오백년은 족히 넘고도 넘어 자벌레가 한 삼십년은 기어올라야 꼭대기 우듬지를 가늠할 수 있던 느티나무 그 옛날 동네 사람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5월 단오에 창포 삶아 감은 머리 말리고 거시기네 혼사 날 동네잔치 마당을 열고 서까래 부러지면 주저 .. 閼雲曲 -시 2018.11.09
표본실의 호랑나비 표본실의 호랑나비 의로운 도둑질이 성립하다면 아름다운 도둑질도 가능하리라 맨 처음의 처음부터 남의 것을 훔쳐 제 몸엣것으로 만드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도적이었으니 그는 무지갯빛 검은 색상에 주황의 무늬를 온 몸에 새겨, 딱 한 번 해 입으면 결코 벗을 수 없는 옷을 입고 몸때.. 閼雲曲 -시 2018.11.08
단풍 단풍 쇄골에 떨어진 단풍 한 잎으로도 나 충분하게 길을 잃어 좋았지만 단 한 번의 생애生涯에서 단 하나뿐인 그대 생각에 저릿한 마음 마냥 물들어 부풀었으니 내 갈비뼈 결핍缺乏없이 금이 갔습니다 단풍 쇄골에 떨어진 단풍 한 잎으로도 나 길을 잃어 좋았지만 그대 생각에 저릿한 마.. 閼雲曲 -시 2018.11.08
단풍 단풍 옷소매 단아하게 접고 한 생애를 춤추던 곡예사가 있었으니 그는 온 뺨을 붉게 물들이고 마음까지 온전하게 물들이지 않으면 무대에 서는 법이 없었다 허공에서 줄타기 할라 치면 거미가 수직으로 낙하하여 대롱대롱 매달리듯 하다가도 물위를 둥둥 떠다니듯 하다가도 나비처럼 사.. 閼雲曲 -시 2018.11.07